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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헌법 18조 ‘이익균점권’ 아시나요

제헌헌법 18조 ‘이익균점권’ 아시나요

입력 2011-02-16 00:00
업데이트 2011-02-16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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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제정과 전진한의 역할 이흥재 서울대 법대 교수 출간

최근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우는 목소리가 크다. 이승만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대해서는 일본 극우세력의 용어 ‘자학사관’을 빌려와 “그렇다면 대한민국을 부정하느냐.”라고 비판하고, 긍정적 인식에 대해서는 미국식 용어 ‘건국의 아버지’를 빌려와 부풀리는 방식이다. 국가 중대 사안에 대해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 제정 배경과 의미를 설명한 ‘페더럴리스트 페이퍼’(Federalist Paper)를 참고하는 미국의 풍경이 부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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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 직원이 1963년 만들어진 제헌헌법 필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제헌헌법 원본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국가기록원 부산기록정보센터 직원이 1963년 만들어진 제헌헌법 필사본을 들어보이고 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제헌헌법 원본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이승만 대통령 건국의 아버지?

그런데 ‘건국과 헌법’을 세트로 묶어서 파악하는 것이 한국에 어울리는지는 별로 따지지 않은 듯하다. 1948년 만들어진 제헌헌법을 뜯어보면 과연 이게 ‘자학사관’과 ‘건국의 아버지’ 운운하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내용인지 의문이 든다. “그 사람들은 제헌헌법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가령, 산업화의 토대로 꼽히는 농지개혁은 제헌헌법 86조에 규정되어 있다. 우파들은 “남한의 농지개혁은 실패했다.”는 좌파의 주장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좌파 학자들은 이미 남한의 농지개혁이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그 공은 이승만이 아니라 그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 조봉암에게 돌린다.

조봉암은 “중국식 혁명을 막기 위해서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 남한식 토지개혁을 관철시켰다. 또 제헌헌법 85, 87조는 광물 등의 지하자원과 전기·통신 등 공공산업에 대한 국·공영화, 그러니까 우파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워한다’는 바로 그 ‘국·공영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익균점권 탄생 이유는

놀라운 대목은 한 가지 더 있다. “근로자의 단결, 단체교섭과 단체행동의 자유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라고 규정한 제헌헌법 18조다. 노동자들에게 월급만 주는 게 아니라 기업 이윤 가운데 일부를 떼 주라는 것이다.

흔히 ‘이익 균점권’이라 불리는 조항인데, 지금 전경련 같은 곳에서 들으면 기절초풍할 소리다. 물론 삼성그룹 등 선두 기업들은 이를 자발적으로 실시한다.

그러나 ‘법이 보장한 권리’가 아니라 ‘능력 있는 자본가의 시혜’ 차원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떻게 이런 조항이 생겼을까. 이흥재 서울대 법대 교수가 내놓은 ‘노동법 제정과 전진한의 역할’(서울대출판문화원 펴냄)은 국회 속기록 등의 자료를 토대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전진한(1907~1972)은 이승만 정권 초대 내각의 사회부장관이었던 인물로, 좌익계 노동단체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와해시키기 위해 조직된 우익계 대한노총에서 이승만 총재 아래 위원장을 지냈다. 이를테면 노동계의 이승만 대리인이었던 셈. 이런 인물이었건만 그는 건국에 대한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고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와 농민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판단해 제헌헌법에 ‘이익 균점권’을 밀어 넣었고 이에 맞춰 한국전쟁 와중에 노동쟁의조정법 등 하위 법체계를 만든다.

한마디로 광복 이후에 펼쳐질 시대는 착취와 수탈로 얼룩졌던 일제시대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각인시켜 주고, 국가의 안정을 빨리 되찾기 위해 노동자·농민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광복 이후 노동자·농민 정책 필요

이는 유진오 박사가 만든 제헌헌법 초안에 대한 전진한의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는 초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경제 분야는 취약하다고 봤다. 이어 “농민과 근로대중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하지 않는다면 헌법 초안은 사문화될 것”이라 경고한다. 그가 이익 균점권을 생각하게 된 배경이자, 보수 정치인들과 상공회의소의 집요한 반대를 물리치고 격론 끝에 관철시킨 이유다.

흔히 제헌헌법 등 초기 법률 체계는 광복과 한국전쟁의 혼란 와중에 어서 빨리 종신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승만의 고집 때문에 대통령제라는 권력 구조 외에는 어설프게 논의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승만의 자유당마저도 원래 검토했던 당명이 노농당(勞農黨)이었을 정도로 겉으로야 모두들 노동자, 농민을 내세웠으나 실천 방도는 묘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제헌헌법 가운데 18조와 노동관계법은 당시의 치열한 논쟁 과정으로 봤을 때 이 범주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게 이 교수의 결론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2-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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