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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공감] 추억의 졸업식 속으로…

[세대공감] 추억의 졸업식 속으로…

입력 2011-02-09 00:00
업데이트 2011-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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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날실과 출발의 씨실로 엮은 그 순간

“3년간 가슴앓이를 했던 걔한테 고백을 해야 하는데…” 하지만 끝내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교문을 나섰다. 18살 소년의 안타까운 졸업식은 그렇게 끝났다. 마치 깊은 바다에 소중한 반지를 빠트린 기분이었다. 좋아했던 그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더욱 쓰라렸다. 그 소년, 지금은 50대 중년이 됐다. 졸업 시즌이다.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는 아쉬움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은 어느 세대나 다르지 않다. 또 졸업식 하면 누구나 추억 한 조각씩은 갖고 있다. 애틋한 사랑 얘기도 있고 슬픈 추억도 많다. 졸업식 뒷풀이 때 술 마시며 어른 흉내를 냈던 추억은 애잔하기까지 하다. 최근에는 ‘알몸 졸업식’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상했다. 졸업 시즌을 맞아 세대별로 졸업에 얽힌 추억 앨범을 펼쳐본다.

●눈물의 추억-안녕, 첫사랑…빼앗긴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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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송근석(52·자영업)씨는 40여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을 잊지 못한다. 첫사랑 때문이다. 송씨는 한 여학생을 좋아했다.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덕분에 반에서 1등까지 해 봤다. 하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부끄러워 말조차 붙이지 못했다. 졸업식 날.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 그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잘 지내라.”는 단 한마디였다. 송씨의 수줍은 인사에 그 여학생도 “너도 잘지내.”라며 화답했다. 그 한마디에 송씨는 날아갈 듯 기뻤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 진학 후 뜻밖의 비보를 듣게 됐다. 첫사랑이었던 그 여학생이 남자 친구와 헤어진 아픔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송씨는 “당시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고,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면서 “그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게 한 그녀의 남자 친구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고 회고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초등학교 졸업식 날을 더더욱 잊지 못한다. 좋아했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가슴 한편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어서다.

제주에서 요식업을 하는 강정희(54·여)씨는 졸업식을 생각하면 금세 눈시울이 젖어든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전교 회장이었던 강씨는 연단에 올라 졸업사를 낭독하다 눈물을 쏟아 냈다. “가족같이 지낸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그만….” 눈물을 닦으며 간신히 졸업사를 마친 강씨에게 박수 세례가 쏟아졌지만 기쁨보다 슬픔이 더했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도 그의 눈물은 계속됐다. 반에서 항상 3등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던 강씨는 졸업식 날 시상하는 학력 우수상을 자신이 받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 학력 우수상을 얼마 전 전학 온 친구한테 내주고 말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그는 분한 마음에 엉엉 울고 말았다. 친구들과 모여서 “선생님이 상을 편파적으로 줬다.”며 흉을 보기도 했다.

강씨는 졸업식 후 이틀 동안 선생님을 찾아가 따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그까짓 상을 못 받았다고 내 인생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고 생각하며 잊으려고 애썼단다. 강씨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고등학교 때부터 나름대로 인생을 논했던 것인가.”라며 멋쩍게 웃었다.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자란 이미자(48·주부)씨에게 졸업식은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다가온다. 초등학교에 함께 입학한 친구가 190명이었는데 졸업할 때는 130명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3, 4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 한글만 깨우치면 농사짓고 소를 키우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게 중퇴의 변이었다. 그런데 그는 친구들의 이러한 사정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다. 철없던 그 시절, 친구들이 학교에 나오지 않게 된 이유를 몰랐던 이씨는 친구들을 이상한 눈으로 봐라봤다. 가끔 밥을 먹지 않는 친구가 있으면 왜 밥을 안 먹느냐고 놀렸다. 특히 졸업식 날엔 상장과 선물로 받은 벼루, 먹을 들고 학교를 그만둔 친구들 앞에 가서 눈치 없이 자랑까지 했다.

이후 그는 동문회 모임 때마다 졸업을 못 한 친구들을 수소문해 초대하곤 했다. 그러나 중퇴한 친구들은 처음에 한두번 나오다가 그다음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씨는 “어색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어린 시절 졸업식 날 잘난 척했던 제 모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잘난 척하는 걸로 보일 수 있었을 테니까.”라며 안타까워했다.

●쓸쓸한 식장-맞벌이 부모님 모시기 힘들어

경기도 부천에 사는 대학생 김경은(22·여)씨에게도 졸업식은 아픈 기억이다. 부모의 불화로 중·고 졸업식을 모두 망쳤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만 해도 괜찮았다. 그때는 부모님 모두 졸업식에 왔다. 꽃다발도 받고, 사진도 찍고, 돈가스도 먹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는 어머니만 왔다. 아버지 사업이 최악의 상황에 빠져 한시도 자리를 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는 생화가 비싸다며 싸구려 조화를 사 왔다. 그는 그 조화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펑펑 울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도 아버지는 돈에 쪼들렸다. 결국 부모님은 별거를 택했다. 고등학교 졸업식에도 어머니만 왔다. 그때 어머니가 주신 꽃다발은 조화는 아니었지만 값싸고 흔한 것이었다. 김씨는 섭섭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다만 평일에도 일하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딸을 위해 일을 잠깐 쉬고 오셨다는 게 슬프면서도 기뻤다.

김씨는 “대학교 졸업식 때는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것이 소망”이라면서 “그때는 울지 않고 기쁘게 졸업을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시흥에 사는 대학생 조윤미(24·여)씨는 졸업식만 생각하면 서럽다. 세 살 터울의 언니 때문이다. 비켜 갈 수도 있는 졸업식이 공교롭게도 초등학교, 중학교 두 번이나 겹치고 말았다. 게다가 맞벌이하는 부모님은 항상 바빴기 때문에 졸업식에 참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모 중 한 사람만 시간을 내도 감지덕지였다.

졸업식 날, 겨우 시간을 낼 수 있었던 쪽은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는 겹친 두 번의 졸업식 모두 언니에게로 갔다. 큰딸이라는 점과 고등학교 졸업이라는 상징성 때문이었다. 조씨는 “둘째로 태어나 가장 서러웠을 때가 바로 졸업식 날”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시절 조씨에게 부모님은 항상 바쁜 분들이었다. 운동회, 학예회 때도 부모님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졸업식도 그렇게 상처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식 때는 달랐다. 다른 친구들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을 때 옆에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던 자신의 모습이 너무도 서러웠다. 졸업식 날인데도 손에 꽃 한 송이 들려 있지 않았다.

빈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온 조씨를 맞이한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포옹이었다. 어머니는 “미안하다, 윤미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했다. 조씨는 그때 또 한번 눈물을 쏟고 말았다. 조씨는 “그땐 어린 마음에 섭섭할 만도 했어요. 지금은 부모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충격의 현장-70년대도 알몸 뒤풀이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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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김종욱(53)씨는 “최근 사회문제로 불거진 알몸 졸업식이 70년대에도 있었다.”고 깜짝 고백을 했다. 친구들이 축하의 의미로 밀가루를 뿌리는 것은 물론 알몸이 훤히 드러나도록 교복을 찢어 대는 친구들도 많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졸업식을 마치고 친구들과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먹고 고량주도 마셨다. 뒤풀이의 마지막은 당구장이었다.

김씨는 “이 같은 어른 흉내 내기 졸업식 뒤풀이가 당시에는 파격적이었지만 사회문제화되진 않았고,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낭만적이고 순수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졸업식의 알몸 뒤풀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그 마음은 이해하지만 과거에 비해 정도가 너무 심하고 적나라하다는 것. 이 때문에 요즘 아이들의 졸업식 뒤풀이는 그에게 여전히 낯선 풍경이다.

8일 고등학교를 졸업한 오지수(19·여)양은 3년 전 친구의 아찔한 중학교 졸업식이 떠올랐다. 친구인 조모(19)양이 바로 알몸 뒤풀이를 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조양은 졸업식 전날 밥을 굶었다. 옷이 찢어질 것에 대비해 조금이라도 날씬하게 보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졸업식 날, 조양은 고등학교 1학년 선배들로부터 밀가루·까나리액젓·케첩·계란 세례를 받았고 옷도 찢겼다. 알몸 상태로 거리에 나가 애국가를 불렀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공짜로 얻어 오라는 벌칙도 받았다.

친구 조양의 이런 행동에 당시 오양은 충격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오양은 “아무리 선배들의 강압에 못 이긴 행동이라 해도 거부하지 않고 모두 행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인터넷 미니홈페이지에 친구 사진이 오를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10일 중학교를 졸업하는 서주영(16)군은 졸업식이 그렇게 기대되지 않는다. 특별할 게 없어서다. 서군은 내심 알몸 졸업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눈치였다.

서군이 다니는 학교의 졸업식은 올해부터 사복을 입고 진행된다. 교복을 찢으려는 학생들이 많아 이를 막기 위한 학교의 조치였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알몸 졸업식 등 ‘막장 졸업식’을 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통지문을 보낸 상태. 밀가루, 토마토 케첩, 소화기 등은 졸업식장 반입 금지 품목이 됐다.

서군은 이번 졸업식을 가족들과 조촐하게 보내기로 했다. 기념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쇠고기를 먹으러 갈 예정이다.

서군은 “요즘 졸업하는 아이들은 졸업식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서도 “어떻게 단속하든 ‘노는 애들’은 무리를 지어 자기들만의 졸업식 뒤풀이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화곡동 전수현(29·여·회사원)씨는 졸업식 하면 틀에 박힌 의례가 떠오른다. “뻔한 재학생의 송사와 졸업생의 답사를 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진정성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또 “가족들과 사진 찍고, 똑같이 자장면 먹으러 가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듣는 일은 초·중·고·대학 내내 반복된 것이어서 식상했다.”고 기억했다.

그랬던 전씨는 지난해, 모교 졸업식 날 후배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밀가루, 케첩 등을 온몸에 뿌리고 교복을 찢고 찍은 사진이 동창회 온라인 카페에 오른 것. 전씨는 “물론 천편일률적인 졸업식이 식상하기도 하고, 해방된 기분을 맘껏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건 좀 지나친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전씨는 “졸업식이 알몸 졸업식으로까지 극단적으로 흐르게 된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졸업식은 의미 있게 석별의 아쉬움을 달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현·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2011-02-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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