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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 전시 뒤 정담]먼 곳에서부터 오는 소리를 듣다

[작가를 만나다 | 전시 뒤 정담]먼 곳에서부터 오는 소리를 듣다

입력 2011-01-23 00:00
업데이트 2011-01-2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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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최인수 학장 전시회

서울 한복판 고즈넉한 한옥 갤러리 아트링크(관장 이경은)에서 별난 전시회를 만났다. 이름표도 없는 작품들이 하나하나 원래부터 제자리인 양 편안하게 마당에, 안방에 눌러 앉아 있다. 첫 만남부터 데면데면함이라곤 없는 은은한 스며듦. 순간, 절집 앞마당에 청명하게 퍼지는 풍경소리가 생각난 건 무슨 이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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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_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선생님의 풍부한 미술에 관한 생각, 뚜렷한 미학적 관점 등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삶과꿈》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더욱 더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 중 선생님 작품을 보러 오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관람객들이 ‘참 맑다, 깨끗하다’ ‘뭔지 모르지만 작가가 그럴 것이다’ 등 이분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마음으로 먼저 보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또 그러면서도 ‘너무 어렵다’ ‘혹시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것이 있지 않을까?’ 등의 의문을 가지며 마음으로 본 것들을 다시 머리로 생각하고 제게 작품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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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_ 마음으로 보고 머리로 간다는 표현이 참…. 우리는 현대에 와서 미술작품을 머리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고, 머리로 확인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그림이나 좋은 음악은 설명해 주기 전에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여러 미술사조가 복잡하게 얽혀지면서 서로들 주장하는 바가 달라 말이 많아졌습니다.

저는 마음으로 보고 감상하는 방법이 작품을 가장 잘 감상하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적으로 보는 것이 먼저고 지적인 노력은 그 다음입니다. 지적인 것을 너무 들이댄다면 그 자체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억압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과찬이지만 제 작품을 마음으로 보시고 관람객들이 ‘맑다, 깨끗하다’고 표현해 주셨다고 하는데 그것은 조각에서 참 좋은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조각의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브랑쿠시(Brancusi)는 “새로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가 어떠냐,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 아시아에서는 “눈으로 보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만 못하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기로 보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암시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라는 게 뭔가 생각해 봤는데 우리 몸과 마음 전체를 가다듬지 않으면 그런 내공의 상태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그런 점은 제가 앞으로 풀어갈 숙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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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_ 선생님 작업에서 제가 인상 깊었던 것은, 선생님이 굉장히 독자적인 길을 가신다는 겁니다. 요즘의 조각가들을 보면 현대의 입으로, 현대에 맞는 재료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재료를 가지고 많은 실험과 시도들을 하는데, 선생님은 현대미술 작가이면서도 재료로 치면 가장 원시적인, 가장 전통적인 재료(흙)에 천착하시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남다른 생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최인수_ 프랑스의 미학자 폴 비릴리오는 《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을 통해 ‘현대사회는 <컴퓨터 인터넷의 속도> <질주하는 속도> 등 속도의 계(질주 계)에 들어와 있다. 상황이 이러니 어떻게 예술의 앞길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라며 곤혹스러운 심정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흙은 조각가로서 지당하게 다뤄야하는 재료인데, 시대의 변화에 의해 ‘왜 흙이냐?’ ‘왜 가장 오래된 재료를 다루고 있느냐?’는 역설적인 질문도 받을 수 있다고 봅니다. 제가 흙을 다루는 것은 자연과 유리되고 싶지 않다는 뜻입니다. 저는 조각가로서 흙이라든지 자연재료를 의미 있게 들여다봅니다. 그 이유는 시간에 대해서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류라든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각의 흐름이라든지 이런 것보다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살아가는 데 실존적인 문제인 시간에 대해서 굉장히 의미 있는 질문을 제 자신에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전 인류의 미술사를 통해서 제게 최고의 감동을 주는 작품은, ‘라스코 동굴 벽화’입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는 말이 필요 없는 감동과 힘찬 에너지를 줍니다.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볼 때 제 생각에는 그건 시대를 다루지 않았고, 본인들의 가장 실존적인 문제를 다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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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_ “감성적으로 보는 것이 먼저고 지적인 노력은 그 다음이다. 지적인 것을 너무 들이댄다면 그 자체가 작품을 감상하는 데 억압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다른 작가분들은 제목이나 설명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는 데 반해 선생님은 제목도 달지 않는 등 최대한 설명을 배재하시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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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_ 작가는 작품을 창작해서 내놓으면 일단 작품 뒤로 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라는 게 지시적이거나 공리적인 목적을 가지고 설득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제 작업방식 자체가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업을 할 때 점토를 주물러서 점력을 증가시켜 눈덩이처럼 크게 만든 후 그것을 제 힘만으로 굴립니다. 굴리면 제가 미는 힘과 중력, 지면에 닿는 면적의 여러 역학에 의해서 어떤 형태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다 ‘괜찮다, 그럼 스톱’ 이럽니다.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의도를 하고 만들기 보다는 작품에 제가 참여한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게 작업이 끝난 후에 그것을 놓고 ‘내가 왜 굴렸지?’ ‘이것이 나한테 무엇을 이야기 하지?’ 거꾸로 생각합니다. 근데 그것에는 분명 어떤 느낌이, 작품이 주는 현존감이 있습니다. 그럼 저는 또 ‘이런 현상은 왜 우리에게 오지?’ 이렇게 생각해 봅니다. 주체도 없는데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아련한 소리를 온몸으로 느낄 때처럼…. 그 소리는 결국 내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입식으로 이런 것은 이렇다, 저런 것은 저렇다 하는 것에 대해서, 글로 표현하는 데 대해서, 저는 이것이 오는 것을 잘 깨우쳐, 귀담아들어서 보는 것이 보는 사람을 주인으로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가도 보는 이도 같습니다. 보는 행위도 주체적인 일입니다. 보는 사람의 목소리를 우리가 빼앗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아트링크(서울시 종로구 안국동 17-6, 02-738-0738)

정담_ 최인수 학장, 이경은 관장·정리_ 임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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