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 이야기 | 며느리밑씻개·며느리배꼽] 이름만큼 재미있는 고부간 갈등

입력 : ㅣ 수정 : 2010-10-1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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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름에 며느리라는 단어와 합성된 풀이 있다. 며느리밑씻개, 며느리배꼽, 꽃며느리밥풀, 며느리주머니 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 유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풀이름은 그 잎이나 꽃의 모양, 색깔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접시꽃은 접시를 닮았고 복주머니란은 복주머니를 닮았다. 옥잠화는 옥비녀를 닮았고 풍선꽃은 풍선을 닮았다. 애기똥풀은 건강한 아기의 똥빛깔을 닮았다. 그렇다면 며느리밑씻개나 며느리배꼽은 어떻게 붙여진 이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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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소개했던 개불알풀꽃만큼이나 점잖지 못한 이름임에 틀림없는 이 풀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며느리밑씻개와 며느리배꼽은 거의 유사하다. 들판이나 길섶 어디든 잘 자라는 풀로 길이 약 2m 정도 덩굴로 자란다. 가지가 많이 갈라지는 편이며 줄기는 붉은 빛이 돌고 네모지며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가시가 있다. 잎은 삼각형 모양으로 가장자리는 결각이 없이 밋밋하다. 꽃은 양성(兩性)이며 가지 끝에 모여 달리고 꽃잎이 없고 꽃받침은 깊게 5개로 갈라져 꽃잎같이 보이는데 수술은 8개, 암술은 3개이다. 여기까진 며느리밑씻개나 며느리배꼽과 거의 같다.

그러나 자세히 관찰해 보면 확실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쉽게 구별하는 방법은 꽃의 색깔이다. 전체적으로 붉은 색의 꽃이 피는 것이 며느리밑씻개이다. 꽃이 피지 않았을 때는 잎을 보면 구분을 쉽게 할 수 있다. 며느리밑씻개는 잎자루가 약간 날렵한 삼각형의 잎이 가장자리에 붙어 있는데 잎자루가 달린 부분이 둥글게 움푹 패여 있다. 며느리배꼽은 잎자루가 둥근 삼각형 잎의 가장자리에서 잎의 가운데, 그러면서 살짝 뒤쪽으로 조금 들어가서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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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며느리배꼽은 가지나 줄기에 혹은 꽃을 받치고 있는 부분에 줄기를 감싸고 있는 둥근 포엽이 있다. 며느리밑씻개에는 없는 것이다. 며느리배꼽의 열매는 둥근 포엽 위에 배꼽 모양으로 열리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맛은 약간 시큼하다. 어린 순은 그래서 그냥 먹기도 했고 나물로 무쳐 먹기도 했다. 그 시큼한 맛이 개운하고 입안의 갈증을 없애준다. 그러나 자라면서부터 그 줄기나 잎의 가운데 맥을 따라 촘촘하게 가시가 여물어 함부로 손댈 수도 없다. 하물며 맛이 좋다 한들 먹을 수조차 없게 된다.

바로 이 가시에서 이 풀의 이름을 유추하지 않았을까 한다. 가시는 그 방향이 줄기가 뻗어나가는 반대 방향으로 자라는데 날카롭기가 그지없다. 그 연한 잎사귀나 그 꽃을 식충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생래적 본능에서 비롯된 방어기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즉 땅에서부터 기어 올라오는 벌레는 이 가시 때문에 도저히 줄기를 따라 올라갈 수가 없다. 그렇게 해서 식물 스스로가 그 개체를 보호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필자의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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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식물의 이름이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알아보기 위해 자료를 찾다보니 이 식물은 1937년 이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웠는지 알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식물의 일본명은 ‘계자고식(繼子尻拭)’으로 한자어로 쓰고 같은 의미인 Mamakononugui로 읽는데, 계자(繼子)는 내 배에서 낳지 않은 남편의 자식의 의미이고, 꽁무니‘고(尻)’, 닦을‘식(拭)’으로 쓴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시어머니가 며느리 미워하는 만큼 일본에서는 의붓자식을 그렇게 미워했다고 한다. 1937년 우리나라에서 현대적인 식물학에 근거를 둔 우리말로 된 식물책인 《조선식물향명집》이 출판되면서 이 책에서 며느리밑씻개를 ‘며누리밑씻개’로 올리고 유사종인 며느리배꼽을 ‘며누리배꼽’으로 표기하면서 그 이름이 오늘에 이어진 것으로 본다.

그 이름이 없지 않았을 것이나, 혹은 지역별로 여러 가지 이름이 있었을 것이나 아무래도 일본의 영향을 받아 근대적인 이름을 얻어 그 이름이 정착되었을 것이다. 일본의 의붓자식이 우리 풍토의 며느리로 바뀌어 이름이 정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로부터 늘 구박받는 천덕꾸러기로 묘사된다. 이 식물의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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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밭에 나가 김을 매고 있었는데 갑자기 며느리가 배가 아프다며 볼일을 보러 간다고 하였다. 며느리가 볼일을 보고 밑씻개 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려 보았지만 마땅히 쓸 만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그 옛날 들판에서 넓은 콩잎이나 칡잎 등이 화장지를 대신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시어머니께 밑씻개 할 것 좀 갖다 달라고 하였더니, 가뜩이나 곱지 않았던 며느리라서 시어머니는 가시가 돋힌 며느리밑씻개를 뜯어다 주었다. 그렇게 해서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또 다른 전설이 전한다. 늘 배가 아프다며 일을 하다가도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며느리가 미워 이 풀을 걷어 말린 것으로 며느리가 밑을 닦도록 했다는 것이다. 종이가 귀했던 옛날에는 화장지 대신 그저 지푸라기나 나뭇잎, 심지어 새끼줄을 걸어놓고 밑닦이로 사용했다. 그런데 며느리에게만 온통 가시투성이인 이 풀의 줄기를 걸어놓고 닦도록 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시집살이가 개집살이 같고 고추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가 더 맵다”고 하던 힘들고 고된 전통사회의 풍속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가 되는 해석도 없지 않다. ‘씻다’와 ‘닦다’의 차이에 착안한 해석이다. 즉 밑씻개는 물로 씻는다는 뜻이지 밑닦개처럼 훔쳐낸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며느리밑씻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건강을 위하여 치질과 어혈 등에 좋은 이 식물을 삶아서 며느리에게 씻도록 준비해 주는 풀이란다. 대를 이어줄 자손을 중시하던 전통사회에서 아무리 시어머니라 하지만 며느리에게 후손 생산에 지장을 줄 수야 있었겠는가?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건강을 위해 준비해 주는 풀이 며느리밑씻개라고 보는 것이다. 어느 쪽이 옳든 식물 이름 하나에도 사회문화적 배경이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글·사진_ 복효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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