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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촌(村)스러운 이야기⑤아들과 함께 걸은 백두대간

걷기|촌(村)스러운 이야기⑤아들과 함께 걸은 백두대간

입력 2010-07-25 00:00
업데이트 2010-07-25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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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과 10월에 아들을 앞세우고 백두대간을 다녀왔습니다. 그동안 실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지난날 홀로 걸었거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던 길을 그 세월 동안에 내가 낳아서 키운, 오히려 키는 나보다 더 큰 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단 두 사람이 가족의 전부인 우리가 백두대간에 있는 동안 또 다른 백두대간인 우리 집은 백두대간을 떠난 모자를 기다리며 50여 일이나 비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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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신 우리는 최소한 살아갈 수 있는 만큼의 짐을 배낭에 챙겨서 지고 다니며 먹고 자고 걸었습니다. 나로서는 20년 만이고 아들 기범이는 첫 경험이었습니다. 이제 와서 백두대간 종주가 뭐 그리 대단한 이야깃거리나 이목이 집중되는 뉴스거리는 되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참 감개무량하고 소중하고 귀한 경험을 다시 한 번 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종주였는데,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산줄기를 이어서 걷기는 세 번째이지만 이번을 포함한 두 번은 백두대간이라는 명칭을 썼지만 처음 했을 때의 명칭은 백두대간이 아니라 태백산맥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20대 때 한 번, 30대 때 한 번, 40대는 건너뛰고, 지금 50대에 한 번을 보탰습니다. 그때 그때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목적은 달랐으나 느끼는 감정은 비슷해서 목적과 상관없이 그냥 몸으로 느끼는 것, 힘들다, 배고프다, 춥다, 덥다, 갈증 난다, 어디가 아프다, 씻고 싶다 등 원초적 본능만 마음을 지배했고 다른 것들은 모두 그 다음 문제였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지난날의 산행 때와 마찬가지로 많은 공부를 하고 돌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는 20대와 30대 때 알피니스트였습니다. 이세상은 오르는 산만 존재하는 듯, 산이 아닌 다른 그 어떤 것도 안중에 없이 정말 열심히 산에 올랐었습니다. 암벽등반은 물론이고 빙벽등반, 백두대간 종주 등반, 히말라야까지 그 당시 할 수 있는 등반을 여성으로서 앞장서서 하고 다녔습니다.

내가 산에 빠져 들었던 이유는 강렬한 몸놀림도 좋았지만 어쩌면 그냥 가만히 있는 산이 좋아서였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가 무슨 기도를 해도 대답 없이 가만히 들어주기만 하는 부처님이나 하느님처럼 산 또한 가만히 있기만 하는, 그러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그래서 나에게 산은 신적인 의미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백두대간에게 선택 당했습니다. 그전에 태백산맥이라는 이름으로 긴긴 능선을 겨울에 홀로 걸었습니다. 내가 시대를 앞선 것인지 불행히도 그때는 아직 백두대간이라는 명칭을 아무도 알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우리가 그동안 그렇게 배워왔고 그렇게 알고 있는 우리나라의 등뼈, 가장 긴 산맥인, 그 태백산맥을 부산 금정산에서 1984년 1월 1일에 출발해서 그해 3월 16일 진부령에 도착했습니다. 장장 76일이나 걸린 긴 여정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아직 혈기 방자하고 펄펄한 열정만 넘치는 20대였고, 그 등반이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국토의 맥과 얼을 찾아서라는 둥, 기타 특별한 목적이 있는 등반이라기보다 순전히 개인적 방황 때문에 계획되었습니다.

국토의 맥과 얼을 찾아 길 떠날 만큼 애국자도 아니었고, 이론도 전혀 정리되지 못한 풋내기 산꾼일 뿐인 나는 무모한 용기와 열정 그리고 젊음뿐이었습니다. 유난히 내 몫의 외로움이 많았던 나는 그렇게 열심히 산에 다니면서도 왠지 마음은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래서 혼자만의 산행 계획이 세워졌고 혼자 산 능선에 서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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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 그 등반 계획이 얼마나 무모한 것이었는지를, 무거운 짐을 지고 수십 일 동안 산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몰랐습니다. 얼마나 산 능선을 반복적으로 오르내려야 하는지를, 길도 없는 산에서 오로지 지도와 나침반만 보며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몰랐습니다. 잡목이 얼마나 성가시게 사람을 괴롭히는지를, 러셀이 얼마나! 얼마나 힘겨운지를 그때는 몰랐습니다. 수십 일을 혼자 텐트에서 자야 하는 것이 얼마나 추운지를, 매끼 눈을 녹여 마른 빵과 밋밋한 탈지분유 물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를 몰랐습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을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것을 혼자 생각하고 혼자 먹고 자야하고 혼자 걷고, 혼자 울고, 혼자 길을 잃고 헤매고, 다시 혼자 길을 찾아야 하는 길고도 막막했던 날들이었습니다.

정신과 육신은 따로 힘겨워했는데 낮 동안 행동할 때는 정신은 어디로 가고 오로지 육신만 존재하는 듯 ‘힘들다’의 연속이지만 하루 일과를 끝내고 텐트를 치고 들어앉으면 그때부터는 정신이 힘겨워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갑자기 머리카락 끝에서 시작해서 온몸을 지나 손끝 발끝까지 마구 휘젓고 다니는 그 바람 같은, 아니 바늘 같은, 아니 불같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추운 듯도 하고, 배가 고픈 듯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몹시 취한 듯도 하고, 불에 댄 듯도 하고, 터져버릴 듯한 그 무엇.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그것이 단지 외로움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게는 너무 무리한 산행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게는 무리한 것을 중간에 내려놓을 용기가 없어서 나 자신과 대적한 것입니다. 떠나는 용기는 있었으나 중간에 포기하는 용기는 없었나 봅니다. 그래서 울면서, 그 겨울 76일간 울면서 겨우겨우 끝냈습니다. 그 당시 걷기가, 산행이 건강에 좋다고, 심신을 안정시킨다고, 누가 그런 호화로운 말을 했는지 따져 보고 싶었습니다. 그 산행 후 다시는, 정말 다시는 종주 산행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종주 산행뿐만 아니라 산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어떤 걷기든 걷기라면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당시의 푸념이었을 뿐, 나는 여전히 산에 올랐고, 좋다고 종주도 두 번이나 더 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산을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이번에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하며 다시 한 번 느낀 것은 역시 힘들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20년 가까이 장기 산행도 하지 않았고, 특별히 훈련도 하지 않았으며 나이까지 먹었으니 어쩌면 힘이 든 것은 너무나 당연했지만 그 정도가 좀 심해서 산행의 반 정도 되는 한 달을 지나며 마침 추석 명절이라 가족들이 지원을 와서 이틀을 쉬는데 정말로 산행 이외에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기 싫어서 실내에서 기어 다녔습니다. 방에만 있기 답답한 가족들이 바깥나들이를 가고 싶어 했을 때도 “그럴꺼면 나를 리어카에 태우고 다녀”라고 농담을 하면서 웃었습니다. 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산에 들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움직이는 나를 보며 불가사의한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렇게 쉴 때는 환자처럼, 산행할 때는 선수처럼 백두대간 종주 산행을 했습니다.

이번 백두대간 산행이 끝난 후 몸이 한동안 회복되지 않아서 고생을 조금 했습니다. 나와 달리 산행할 때는 나보다 더 힘들어 했던 아이는 산행을 끝낸 후 며칠 동안 푹 자고 일어나더니 언제 갔다 왔냐는 듯 말짱했습니다. 그것을 보며 역시 젊다는 것은 좋은 거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날 종주 산행을 끝낸 후 며칠을 잠만 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고 나자 말짱했던 기억도 납니다. 이제 몸도 회복되고 계절도 좋고 바쁜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된 요즘 백두대간이 궁금합니다.

지도와 나침반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산행이 지난 세월 동안 길도 잘 뚫려 있고, 자료도 많고, 물 구할 수 있는 곳도 알고, 곳곳에 고갯마루도 있고 등등. 한꺼번에 이어서 하면 너무 힘드니까 구간을 나눠 마음 잘 맞고 체력 비슷한 누군가와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바쁠 것 없이 느긋하게 경치 좋은 곳이 나오면 쉬고,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하룻밤 자기도 하고, 힘들면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하며 그렇게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파트너에 대한 부담 없이 서로 보살피며 혼자 걷고 싶을 때는 혼자 걷고, 함께 걷고 싶을 때는 또 그렇게 하는, 정말 그렇게 한 번 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고보니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 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갔다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가고 싶어 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힘들어 했는데 또 가고 싶어 하니 백두대간이 나를 놓아주지 않을 모양입니다.

글·사진_ 남난희 《낮은 산이 낫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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