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하녀

[Movie | 하재봉의 영화읽기] 하녀

입력 2010-07-04 00:00
업데이트 2010-07-04 10:1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고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 <하녀> 원작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다시 만든 2010년판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갔다가 안주인 몰래 주인남자와 관계를 갖고 비극적으로 끝나는 기본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미지 확대


김기영 감독은 일상의 범속한 세계를 초월하는 날카로움과 강렬함으로 피아노 선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는 스릴러 영화를 만들었지만, 임상수 감독은 캐릭터의 형성과정과 주인과 하녀의 계급적 충돌에서 오는 사회적 시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드라마를 만들었다. 따라서 원작과 리메이크에는 두 감독의 시각적 차이가 존재하고 원작으로부터 50년이 지난 시간적 차이와 출연배우들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차별성이 존재한다.

임상수의 <하녀>에는, 젊은 하녀 한 명만 나와서 삼각관계를 형성했던 김기영의 <하녀>와는 다르게 젊은 하녀 은이(전도연)의 선배격인 늙은 하녀 병식(윤여정)이 더 등장한다. 따라서 작품의 긴장관계도 주인남자(이정재)를 축으로 부인과 젊은 하녀로 팽팽한 삼각구도를 형성했던 원작과는 다르게 인물 간의 관계망이 조금 더 복잡해졌다. 임상수의 <하녀>에서 늙은 하녀 병식의 역할은 단지 젊은 하녀 은이의 선배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작품 전체의 맥을 쥐고서 인물 사이의 관계를 연결하고 스토리텔링의 맥을 트는 사통팔달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미지 확대


이혼한 후 친구(황정민)와 함께 살면서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던 은이는 유아교육과를 중퇴한 학력 덕분에 최상류층 저택의 하녀로 들어가게 된다.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은 틈만 나면 복잡한 클래식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고 와인을 즐기며, 쌍동이를 임신한 아내(서우)와 여섯살 난 딸 나미에게 한없이 자상한 완벽에 가까운 남자다.

눈덮인 겨울 밤, 깊은 산 속에 있는 주인집 가족 별장에 간 은이는 밤늦게 와인잔을 들고 찾아온 주인남자 훈이와 격렬한 육체관계를 갖는다. 임상수 감독은, 불의 이미지로 그들의 욕망을 표현한다. 술은 물질적으로는 물의 이미지이지만 시각적, 내면적 이미지로는 불에 가깝다. 술은 타오르는 물이다. 특히 와인은 피빛 강렬함으로 타오르는 물의 욕망을 표현한다.

임상수의 <하녀>에서 주인남자와 젊은 하녀는 두 번의 육체관계를 갖는데 주인남자는 언제나 와인을 들고 하녀를 찾아간다. 처음 그들이 관계를 갖기 전, 화면에는 추운 겨울이지만 뜨거운 물로 가득 찬 야외 수영장씬이 등장한다. 차가운 공기 속으로 수증기가 피어나는 뜨거운 물은, 잠재되어 있는 그들의 욕망, 곧 이어 전개될 비밀스러운 은밀함을 상징한다. 타오르는 불의 욕망은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가장 강렬하게 표현되는데 허공에 매달린 은이의 타오르는 몸은 욕망의 비극적 결말을 보여준다.

<하녀>에 나타난 불의 이미지 속에는 주인남자와 젊은 하녀의 육체관계가 단지 주인남자의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주인남자에게 이끌린 젊은 하녀의 은밀한 욕망이 만난 것이라는 임상수의 해석이 숨어 있다.

이미지 확대


이미지 확대


중요한 것은, 늙은 하녀 병식의 캐릭터이다. 늙은 하녀는 아들이 검사가 된 후에도 부잣집에서 하녀 생활을 계속한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생활을 해서 뼛속 깊이 하녀 근성이 몸에 밴 여자이다. 병식은 젊은 하녀 은이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해서 안주인의 친정 엄마에게 알리는 메신적 역할을 한다. 또한 후반부에는 은이와 계급적 연대를 통해 상류층에 저항한다. 주인남자와 여주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등 모든 것을 물질로 해석하는 상류층 집안과 은이로 상징되는 하류층 사이에 늙은 하녀가 존재한다. 신분은 비록 하녀지만 그녀의 아들은 검사이며 두 계층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늙은 하녀는 몸에 밴 하녀 근성으로 상류층을 모시고 살지만 은이를 통해 상류층에 저항하는 인간적 시선을 획득한다. 따라서 감독의 시선은 늙은 하녀를 통해 젊은 하녀를 보여 주고, 늙은 하녀의 시선으로 물질에 오염된 상류층 집안을 바라본다. 안주인 여자와 그녀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물질 세계, 또한 주인남자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권위와 권력의 무서움.

임상수는 주인남자 훈과 그의 아내 등 상류층 집안을 자본주의 사회의 물질적 간계를 상징하는 전형적 인물들로 묘사한다. 그는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붙은 습관이다. 여자와 육체관계를 가진 후 여자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는 엄청난 금액이 적힌 수표를 몸에 밴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건네준다. 늙은 하녀의 아들이 검사로 임용되었다는 말을 듣고 두툼한 봉투로 축하를 한다. 젊은 하녀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도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억 단위의 거액을 제시한다. 임상수 감독의 시각은 천민자본주의를 능멸하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물질로만 생각하는 상류층의 죄의식 없는 범죄를 고발하고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것 이외에는 더 이상 강렬한 저항을 찾아볼 수 없는 무기력한 하층민의 분노를 표현하자는 것이다.

젊은 하녀 은이의 비극적 결말 속에는, 돈과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신음하는 이 시대 대중들의 무기력함과 분노가 숨어 있다. 은이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낙태와 출산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상층부와 하층부의 긴장관계는 하나의 상징적 표현이다. 아이의 낙태를 결정하는 권력 상층부의 비인간적 태도, 그리고 엄청난 금액의 돈으로 회유하는 그 유혹에 따르지 않는 은이의 선택, 또한 아이의 낙태를 알고 그것으로 아내와 장모를 위협하는 주인남자의 모습은 금력과 권력의 역학관계에 대한 소름끼치는 묘사이다.

방법적으로는 김기영 감독의 강렬함 대신 현대적 모더니즘의 럭셔리한 세계를 선택했지만 그 메시지만큼은 원작을 뛰어 넘는 사회적 발언으로 무장된 영화가 임상수의

<하녀>다.

글_ 하재봉 영화평론가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