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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배경에 스탈린 책략 있다”

“한국전쟁 배경에 스탈린 책략 있다”

입력 2010-06-18 00:00
업데이트 2010-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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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시보 “北-소련,한국전 촉발” 주장 게재

 한국전쟁은 북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소련의 스탈린이 승인하면서 초래됐으나 스탈린은 전쟁발발 책임을 마오쩌둥(毛澤東)에게 슬그머니 떠넘겼다는 선즈화(沈志華) 화동사범대 교수의 주장을 환구시보 영문판이 17일 보도했다.

 선 교수는 구소련 붕괴 후 공개된 비밀문서를 대량 인용해 저술한 ‘마오쩌둥,스탈린과 한국전쟁’에서 이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있으나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가 그의 주장을 이 날짜 10면 전면 인터뷰로 게재한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정부는 공식적인 교과서 등에서 한국전쟁을 누가 일으켰는지 분명한 정의를 내리지 않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통상 한국전쟁이 미국과 결탁한 남한이 중국의 동맹인 북한을 침공해 일어난 것으로,따라서 중공군 참전이 정의롭다고 여기고 있다.

 중국에서 한국전쟁은 ‘미국의 위협을 제거하는 북한을 원조하자’는 의미의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으로 불린다.

 그는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국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하고 스탈린은 한반도에 소련군을 진주시켰는데,한반도를 소련 단독으로 관리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미국이 38도선을 긋자고 제의해 분단이 이뤄졌다”면서 “당시 스탈린은 일본도 한반도와 같은 방법으로 관리하자고 제의했으나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미.소간 갈등이 축적됐고 1947년 유럽에서 냉전이 시작되면서 한반도 문제에서도 미.소 협력이 더 이상 이뤄질 수 없었다”면서 “그런 가운데 미국은 자국 영향력하에 있는 유엔이 한반도 이슈를 다루기를 원했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1948년 남한에서 단독선거가 실시됐고 한반도 분단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 교수는 이어 “분단후 남북한 모두 무력 통일을 원했으며 선거후 소련과 미국이 각각 한반도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면서 남북간에 작은 충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김일성은 지속적으로 스탈린과 마오쩌둥에게 남침 승인을 요청했으나 소련과 중국 모두 처음에는 이의를 제기했다”면서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중국은 자국의 (대만과의) 통일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구소련 붕괴 후 해제된 기밀문서와 중국 내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선 교수는 그러면서 “1950년 1월 스탈린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러 비밀회담을 했고 이 자리에서 ‘남침을 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고 개입하기에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다’는 김일성의 판단에 스탈린이 동조하면서 남침계획을 승인했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은 그러나 이 회담에서 김일성에게 마오쩌둥이 동아시아 문제와 관련해 깊은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남침계획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동의없이 수행될 수 없으며 미국이 개입하면 소련은 북한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김일성이 중국을 다시 찾아 지원을 요청하게 됐다”고 부언했다.

 그는 “김일성이 베이징(北京)을 찾은 것은 1950년 5월13일로,(남침계획과 관련해) 마오쩌둥으로부터 동의를 구하려고 애를 썼으나,당시 마오쩌둥은 소련이 남침계획을 승인했다는데 의문을 제기하면서 당시 중국 주재 니콜라이 로슈친 대사를 통해 스탈린의 진의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스탈린은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했다고 확인했으며 그러나 만약 중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남침을) 다시 논의해야 하거나 북한과 중국이 최종 결정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됐던 것”이라면서 “그런 탓에 마오쩌둥은 (남침과 관련해) 소련과 북한의 공동 입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이 개입하면 중공군을 보내 북한을 지원하기로 결정해 북.중 국경으로 병력을 즉각 이동시켰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한국전쟁은 소련과 북한의 아이디어였으나 스탈린은 이에 대한 책임을 마오쩌둥에게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스탈린이 남침계획에 반대하다가 찬성으로 돌아선 배경과 관련,“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하면서 소련은 1945년에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정부와 맺었던 여러가지 조약에 대해 마오쩌둥과 다시 회담을 해야 했던 상황과 연관이 있다”면서 “당시 소련은 중국내 창춘철도에 대해 소유권을 갖고 있었으며 다롄항을 30년간 임대 사용키로 했고 뤼순항에 소련군을 30년간 주둔시키로 했던 상태였다”고 전했다.

 “스탈린은 이와 관련한 ‘개정’이 불가피하다고 봤고 그렇게 될 경우 극동지역에서 소련이 교두보를 상실하는 상황에 처하자 한반도에 친(親)소련 정부가 들어서면 극동에서 다시 교두보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김일성의 남침을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그는 덧붙였다.

 선 교수는 김일성과 스탈린이 미국이 한국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이유에 대해 “1949년 12월 스탈린의 생일을 빌미로 마오쩌둥이 모스크바를 방문해 양국 회담이 벌어질 당시 상황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중.소 동맹 형성을 우려,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입장이었으며 그런 탓에 대만문제를 포함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가하면 당시 딘 애치슨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는 미국의 방위선이 아니라고까지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를 (액면 그대로) 판단한 듯하다”고 부언했다.

 그는 “중-소간에 동맹이 형성되자 미국은 즉각 아시아와 유럽에서 공산주의 확산 봉쇄에 나섰고 한국전쟁에도 즉각 개입했다”고 분석했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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