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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대관령] 바람의 환승역에 오르다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대관령] 바람의 환승역에 오르다

입력 2010-06-06 00:00
업데이트 2010-06-06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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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본다. 대관령 정상에서 폭주하는 바람을 맞는다. 바람이 몰려가는 길을 보기 위해선 먼저 저 바람을 다 견뎌야 한다. 막무가내 바람의 아우성을 다 들어야 한다. 신출귀몰 바람의 발굽소리에 정신을 놓는다면 그 순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고삐를 단단히 쥐고 바람의 등줄기에 올라타야 한다. 전신 모든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열고 바람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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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지붕 대관령
나만의 지붕 대관령


산을 머리에 이고 올라야 하는 대관령은 바람의 환승역이다. 세상 모든 바람들이 반드시 한번은 들렀다 가는 역이다. 오직 바람을 거느린 신만이 오를 수 있다던 이곳에도 언제부턴가 길이 생겼다. 첩첩 산맥과 산맥들, 거목과 거목 사이 짐승들이 다니던 길에 하나둘 사람들의 발자국이 쌓이면서 길이 열렸다. 산비둘기의 날갯짓도 바람을 타야 하듯이 대관령을 오를 때는 반드시 바람을 타야 한다. 가슴 깊이 바람을 들이마셔야 한다. 몸속 세포 하나하나까지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 귓속을 가득 채우는 바람소리 쉬쉬쉬, 하늘을 관장하는 신의 목소리가 그대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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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과 거목 사이 짐승들이 다니던 길에 하나둘 사람들의 발자국이 쌓이면서 길이 열렸다.
거목과 거목 사이 짐승들이 다니던 길에 하나둘 사람들의 발자국이 쌓이면서 길이 열렸다.


개마고원이 한반도의 지붕이라면 대관령은 남한의 지붕. 대굴대굴 구르기 쉽다하여 이곳 사람들은 ‘대굴령’이라고 부른다. 그 지붕에 초원이 있고 목장이 있다. 눈앞에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에 넋을 빼앗겼다간 자칫 바람에 휩쓸리기 십상이다. 풀밭 위에서 양떼와 소떼가 바람을 맞는다. 눈꺼풀 흩날리며 풀을 뜯는다. 이곳 대관령에선 바람을 다 견디고 제 스스로 살을 찌워야 한다. 방목이란 그런 것이다. 꼬랑지에 풍향계를 달고 어깨 너머로 바람을 흘려보내야 한다. 바람과 맞서지 않고 기대어 사는 것. 그것이 풀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풀의 부드러움, 그 유연함이 바로 풀이 가진 생존전략이다. “한 포기의 목초가 곧 우유고 고기다.” 풀밭에 세워진 간판에 쓰인 구호에서 이곳 사람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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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에 올라서면 다소 이국적이라고 할 만한 거대한 구조물들이 서 있다. 바로 풍력발전을 일으키는 풍차다. 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바람으로 청정에너지를 만들고 있는 현장이다. 풍차의 세 개의 날개가 끊임없이 바람의 폐부를 휘젓고 있다. 바람의 힘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장관이다. 태평양을 건너온 거센 바람이 비릿한 바다 냄새를 풍기며 돌고 돈다. 바람을 돌돌 말아 끝없이 돌고 도는 풍차들. 바람의 날개와 풍차의 날개가 부딪치는 힘이 전기를 만든다. 풍차의 거대한 날개는 날아오르는 한 마리 붕새 같다. 대관령 언덕 곳곳에 태고의 바람을 부르는 새들이 모여 있다. 그곳으로 구름과 안개가 떼로 몰려가 잠시 머물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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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돌돌 말아 끝없이 돌고 도는 풍차들
바람을 돌돌 말아 끝없이 돌고 도는 풍차들


대관령 언덕에 드러난 흙들은 온통 붉다. 워낙 고지대인데다가 연평균 기온이 낮아 논농사나 과실수 재배는 하기 힘들다. 보통 배추나 무 등 고랭지채소를 경작하다보니 제철이 아니면 흙들은 붉은 기억에 갇힌 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주로 김장철에 출하되는 이곳의 채소들은 저온과 바람을 이겨낸 탓인지 최고의 품질로 인정받고 있다. 갈아놓은 채소밭에도 이랑마다 바람의 길이 있다. 대관령의 밭고랑은 다른 지역보다 유독 넓고 깊다. 산에 기대고 하늘에 기대고 바람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자연을 다루는 지혜가 묻어나는 풍경이다.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화되어야 함을 보여주는 지혜의 한 단면이다.

목덜미를 잡아채는 바람을 뒤로하고 대관령 옛길을 향해 내려간다. 수천 년 전부터 우리네 선조들의 눈물과 애환, 그리움으로 닦아놓은 길이다. 친정을 떠나 한양으로 향하던 신사임당의 치맛자락을 잡고 늘어졌을 법한 아름드리 고목들에 가려 한낮인데도 길은 어둡다. 길이 얼마나 깊고 험했으면 이곳을 오르다 굶어죽은 사람도 있었다고 할까. 길에 기대 살다가 길 위에 꼬꾸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이 길로 누군가는 임지로 향한 영광의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원지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그리운 이를 찾아 설레는 봇짐을 짊어졌을 것이고 방물장수에겐 한걸음 한걸음이 고단한 여정이었으리라. 다신 돌아올 수 없는 길은 없다. 길은 언제나 기다림이며 돌아오는 이를 배척하지 않는다. 바닥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던가. ‘대굴령’ 옛길이 딱 그런 길이다.

구영동고속도로 대관령정상휴게소 옆 반정에서 어흘리마을까지 약 5㎞에 걸친 산길은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꼭 한번 산행을 권하고 싶은 등산 코스다. 워낙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로 닦여진 길이라 산세에 비해 폭도 넓고 완만하다.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부담 없이 오르기에도 좋은 추억의 길이라 할 수 있다. 몇 백 년 묵은 소나무들과 하늘을 가릴 정도로 다양한 낙엽송들이 내뿜는 나무 냄새가 웬만한 자연휴양림보다 진하고 좋다. 이 옛길에선 나무 위로, 숲 위로 흘러가는 바람의 꽁무니를 볼 수 있어 더욱 좋다. 바람이 어디로 가는지 잠시 숨을 멈추고 올려다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잠시 시간을 붙잡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강릉시 성산면에 위치한 대관령박물관도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다.

길 위에선 잃어버린 시간 따윈 없다. 누군가 혹은 어딘가 기댈 데가 있다는 것은 아직 축복이다. 길에 기대어, 바람에 기대어, 하늘에 기대어 보라. 또는 사랑에, 추억에 기대어 보라. 대관령, 이 척박한 땅에서도 꽃은 피고, 머리에 산을 이고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아, 바람이 분다고 두려워 마라. 바람이 불면 바람을 다 마시면 되고, 눈물이 나면 눈물이 나는 대로 다 닦으면 되고, 길을 잃으면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우선은 저 바람을 다 견뎌야 한다.




TIP

대관령목장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이용

횡계 톨게이트를 통과 후 우회전하여

100m 전방 시내 방향으로

횡계 시내 로터리까지 직진한다.

로터리에서 좌회전 또는

직진 후 좌회전, 다리 건너 좌회전하여

의야지 마을회관을 지나서 직진하면

대관령목장-한일목장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길로 들어서면 대관령삼양목장에 도착.

내비게이션을 이용 시 대관령삼양목장

(강원도 평창군 도암면 횡계2리

산 1-107번지)을

검색하면 된다.

문의: 033-335-5044




글·사진_ 고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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