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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파주 헤이리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파주 헤이리

입력 2010-04-18 00:00
업데이트 2010-04-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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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들이 봄날처럼 두근거리는 마을

봄/윤성택

나무는 가지마다

망울 귀를 열고

햇살을 엿듣는 중이다

도처에 소문이 파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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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품은 갤러리
나무를 품은 갤러리


뒤돌아보고 싶을 때 우리는 어느덧 봄의 경계를 지난다. 햇발이 감겼다가 천천히 풀리는 오후, 봄은 빙글빙글 꽃의 봉오리에서 원심력을 갖는다. 무언가를 위해 떠돈다는 것은 무채색의 기억에 색색의 물감과도 같은 연민을 떨구는 것이다. 죽음조차 가늘고 가는 빛의 줄기를 따라 잎맥으로 옮아가는, 시간의 응시. 그러니 지금은 삼십 촉 기다림이 봄의 형식이다. 꽃이 피기 위해 짚어보는 미열은, 각오하고 고백한 첫인상 같은 것. 그 마음이 내내 멀미처럼 아른거리는 봄. 누구든 문득 그런 설레임의 자세로 봄을 지나곤 한다. 생각하면 눈(目)이 만지지 못하는 다정이 있다.

한결 따스해진 봄 햇살 따라 예술의 정취가 녹아든 마을은 싱그러워 보였다. 헤이리 예술마을은 자연과 건축과 예술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활짝 핀 들녘 같다. 군데군데 빈 여백이 있어 더 자연스러운 공간들은 개발이라는 이름 대신 꿈을 택한 듯싶다. 지도를 펼쳐들며 느릿느릿 걸어가는 사람들, 혹은 앙증맞은 자전거로 구석구석을 들러보는 커플들도 눈에 띈다. 그러고 보면 이곳의 갤러리나 건물들은 햇볕과 그늘을 입은 모습 이외에는 별다른 색이 없다. 이곳의 모든 건물들은 인공적인 페인트 색을 금지하고 있으니, 온통 자연스러운 나무나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색감들이 봄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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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림옹기박물관의 옹기들
한향림옹기박물관의 옹기들


사람도 풍경도 별난 마을

헤이리는 1998년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공동체 마을을 구상하고 터전을 일궜다. 그리고 2010년 봄, 160여 채의 공간들이 들어섰고 아직도 100여 채가 진행형의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이곳의 빈터들은 누군가의 마음이 깃들 고요한 여백인 것이다. 길들은 넝쿨처럼 여기저기로 뻗어 있다. 이 길인 듯싶다가도 어느덧 저 길에 들어서곤 한다. 곳곳에 간이로 서 있는 지도 표지판을 봐도 도통 방향을 가늠하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건물이 먼저 사람을 알아보는 듯하다. 갤러리며 박물관이며 미술관이 휘휘 사람을 둘러보다 길을 내민다. 길을 조금 헤매도 좋을 것이고 우연히 맞닥뜨린 건물 안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림이나 설치작품에 시선을 빼앗겨도 좋다. 건물과 지형이 산의 흐름을 따라 고즈넉하게 펼쳐진 길을 걷다보면 이곳에서 길을 잃는 것은 도시를 잊는 것과 같다. 자동차를 버리고 운동화 그리고 가방, 물병만 있다면, 거기에 기꺼이 홀로일 수 있다면 북쪽의 햇살과 선명한 노을이 우리에게로 여행을 온다. 그리고 엽서의 첫 줄에 당신의 첫인상을 적는다.

커다란 지도를 펼쳐보면 마을로 들어서는 아홉 개의 입구가 있다.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마을 한가운데 갈대 늪지에 이르게 된다. 갈대 늪지는 마치 마을의 눈동자처럼 수면을 품고 구름으로 깜박인다. 이 늪지는 마을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외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긴 속눈썹처럼 갈대와 부들이 나부끼고 연꽃은 망막에 비친 빛의 호기심. 갈대광장의 야외 평상에서 이 외눈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바람도 인생도 감미로운 음악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서로 자연스럽게 부딪치며 후렴구 같은 바람이 볼을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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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판으로 마감된 건물 외관
동판으로 마감된 건물 외관


집도 길들여지면 순한 색을 입는다. 12m를 넘지 않아야 하는 건축지침으로 설계된 건물들은 주인을 닮아 늙어가듯 빗물이 스민 흔적이나 물이끼로 건물의 중후한 주름을 이룬다. 어떤 집은 녹슨 철 느낌으로, 이끼로, 목재로, 노출콘크리트로 제 운명을 지닌 채 담담히 살아간다. 그 너머의 높이는 저녁해에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 자연과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어느 각도에서건 사진촬영은 열 발짝 안이다. 그 선을 넘으면 빨갛게 물드는 서녘의 하늘과의 교신이다. 마을에 오백 년 이상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켜온 느티나무가 사계절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스무 개가 넘는 갤러리가 다양한 각종 전시를 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그곳에 가면 꼭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문화예술이 거창한 것은 아니다. 박쥐색 물렁한 카우보이모자로 산책 중인 영화감독을 만난다거나, 언 땅 속에서 남몰래 자라는 뿌리를 기억하는 시인, 한국사의 심연 속으로 담배를 문 역사학자, 이 마을 자체가 오케스트라인 반백의 지휘자, 생의 이미지로 한글 전각을 새기는 서예가, 언제 들어도 늘 영 팝스 같은 레코드판을 고르고 있는 방송인을 보아도 이곳에서는 다만 평범한 일상일 뿐이다. 유원지의 시끌벅적함과는 사뭇 다른 까닭은 이렇게 문화예술인들이 마을 안에서 두근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만남도 우연이 여러 번 겹치면 월남치마처럼 푸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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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
깨끗한 물이 흐르는 수로


헤이리의 봄

봄을 맞이한다는 건 자신의 겨울에서 천천히 횡단해 오는 내면에 탑승하는 것이다. 어떤 결의처럼 꽃이 기침을 하고 햇볕의 인플루엔자가 대유행인 요즘, 창백하도록 쾌청한 날씨에 나를 기대어본다. 나무가 가장 늦게 꽃으로 옮긴 그늘에서 향기가 난다. 대기권 밖으로 올라서는 로켓의 지상의 무늬 같은 압력이 꽃의 궤도이다. 그 생각이 다시 밀려올 때 꽃은 착지를 알지 못하도록 바람을 섞는다. 바람의 뒷면에는 언제나 시간의 분진이 있다. 누군가 그 아래에 있다면 그건 나의 어깨를 누르는 쓸쓸한 결림. 봄에 태어난 아이는 오래전 아비가 그려본 밝은 생이기를. 쿨럭, 쿨럭, 봄이 가방을 챙겨 안과 밖을 지우며 여전히 그 간이역에 서 있다.

글_ 윤성택 시인·사진_ 이안수 작가




<TIP>

헤이리는 경기도 최초 ‘문화지구’로 넓이는 약 49만여m²(15만 평)이다.

경기도 파주 지역에서 전해져 오는 전래농요인

‘헤이리 소리’로부터 ‘헤이리’라는 예술마을 이름이 지어졌다.

헤이리를 방문할 때에는 홈페이지(www.heyri.net) 사이버투어에서

지도를 출력해 오는 것은 필수.

갤러리 등 전시관들은 오전 11시 경에 대부분 오픈하며

저녁 6시 즈음에 마무리된다.

매주 월요일은 대체로 휴관이 많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많아

호젓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평일 오후 무렵이 적당하다.

자동차를 이용해 방문할 경우 문산 방면 자유로를 따라

성동IC로 빠져 첫 번째 사거리에서 좌회전.

내비게이션용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번지.

버스는 합정역 2번 출구에서 2200번 좌석버스가 있다.

헤이리까지 40분 정도 소요.

여러 곳의 박물관이나 갤러리 등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종합안내소(1588-7387)에서는 패키지 티켓을 판매한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왔다면 매그닉스 부스(070-7798-0875)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

1인용 자전거 대여료 2시간에 6천 원.

자전거 잠금장치 및 바구니가 있어 관람에 용이하다.

가이드의 설명이 곁들인 전기차 투어버스도 함께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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