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 만인보 완간 안팎

입력 : ㅣ 수정 : 2010-04-1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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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쓴 민족 호적부… 해외서도

미국의 계관시인이자 2008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로버트 하스는 9일 ‘만인보’ 완간에 맞춰 “전 세계에 주는 선물이자 한국 국민의 생명력에 바치는 찬사”라는 내용의 축전을 고은 시인에게 보냈다.

일찌감치 “오늘날 문학에서 가장 비범한 기획”이라고 칭송했던 하스는 “영문판 독자들조차 감동시키고 흥분하게 만드는 만인보는 20세기 모든 인간성과 폭력에 대한 기막힌 초상”이라고 평가했다. 프랑스의 대표 시인 미셸 드기 역시 “놀라운 작품이다. 몇 천개의 삶을 시 속에 새겨 현현시켰다.”고 찬사를 보냈다.

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지난 25년의 시간을 더듬으며 ‘만인보’ 30권 완간 소감을 밝히는 고은 시인.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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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지난 25년의 시간을 더듬으며 ‘만인보’ 30권 완간 소감을 밝히는 고은 시인.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민족·국경 넘어 인류 보편성 획득

만인보는 이미 영어 선집, 스웨덴어 선집, 프랑스어 선집으로 출간됐다. 조만간 러시아어 선집도 나온다. 스웨덴에서는 중등학교 ‘영원한 고전’ 목록에 선정되기도 했다. 한반도, 한민족이라는 특수성을 가진 역사와 인물로 출발한 작품이지만, 민족과 국경의 경계에 갇히지 않은 채 인류 보편성을 획득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1권 때부터 함께해 온 창작과비평사는 30권 완간을 기념해 11권의 양장본으로 시집을 다시 묶었다. 각 권 맨 앞에는 ‘만인만이 만인이 아닙니다. 만물도 만인입니다.’, ‘사람은 가고 시는 온다’, ‘그 누구도 세상의 단역이다. 주역이 아니다.’ 등 제사(題詞) 형식을 띠는 짧은 시 12점이 실렸다. 고은 시인이 직접 붓으로 쓴 글씨들이다.

그는 “1980년 사형이 구형돼 품위있는 최후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에 광주 얘기를 어렴풋이 전해들었다. 여기에서 살아 나갈 수 있으면, 이걸 써야겠다고 구상했다.”고 꼬박 30년 전 만인보 기획 배경을 밝혔다. 이어 “만인보는 내가 개척한 시적 행위를 넘어서 고전 서사시 위에 있어야 할 서사 체계의 생태적 장르로 정착되길 바란다.”면서 “인간을 넘어서서 ‘만물보’로 나아감으로써 인간과 자연, 인간과 우주의 상응에 기여하기를 꿈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납과 연역, 서사와 서정, 서술과 묘사, 기억과 상상, 문학과 역사, 현실과 허구, 이윽고 시와 시가 아니라는 것(非詩)…, 이런 것들의 합신(合身)이 만인보의 의미일지 모르겠다. 시는 우주 만상의 화합이라고 읽고 있다.”고 덧붙인다. 더이상 형식으로 규정짓거나 굳이 이름을 지으려는 범주 바깥으로 시인이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친 숨 내쉬는 사람들 이야기가 대서사시로

만인보 완간의 문학적 의미를 조명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날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창작과비평사 주관으로 열린 심포지엄에서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형수는 “만인보에 대한 기존의 평가는 통상적으로 예측 가능한 관념의 범주를 넘어가지 않는다. 근대적 교양에 의한 처방전은 대부분 그를 역행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은 “시편들은 모두 개별적 독립성을 가지면서도 서사적 통합을 구현하고 있다.”면서 “이 독특한 서사 형식은 남다른 미학적 묘책보다 삶의 기본에 충실한 튼튼한 역사의식에서 태어났다.”고 말했다.

‘만인보’는 온통 사람의 이야기다. 평생에 걸쳐 삶에서도, 문학에서도 사람을 놓지 않았던 노() 시인의 시는 ‘만인보’ 이전에 이미 ‘만인보’였다. 시(詩)를 살아간 것도, 역사를 일궈간 것도, 민족을 꾸려간 것도, 사람이었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그저 사람의 삶을 그대로 써내려 갔을 뿐”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뒤, 거친 숨 내쉬는 5600여개의 생애는 4001편의 시가 되어 세계가 주목하는 민족의 대서사시로 완성됐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4-1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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