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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이야기 | 민들레]민들레는 꽃이 아니다

[야생초 이야기 | 민들레]민들레는 꽃이 아니다

입력 2010-03-21 00:00
업데이트 2010-03-2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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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가 있었다. 같은 어법으로 민들레를 정의한다면, ‘민들레는 꽃이 아니다. 민들레는 정서다’라고 말해 보고 싶다. 민들레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가수 이미자의 <일편단심 민들레>, 박미경의 <민들레 홀씨 되어> 라는 대중가요와 더불어 이해인 수녀의 <민들레의 영토> 등은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하다. 민들레를 소재로 한 작품은 무수히 많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만도 고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똥>, 박완서의 《옥상의 민들레꽃》을 비롯하여 네댓 편의 작품이 민들레를 소재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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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민들레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게 소개되어 있다. 노아의 방주에 타지 못한 식물들 가운데 민들레는 마지막에 대한 공포 때문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한다. 착하디착한 민들레가 하느님께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 하느님은 민들레 씨를 노아의 방주 지붕 위에 살짝 올려놓으셨다. 민들레 씨는 산중턱 양지바른 곳에 내려앉아 다시 노란 꽃을 피우게 되었고 낮에는 어여쁜 얼굴로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였으며, 해가 없는 밤이면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 이해인 수녀가 수도자의 길을 택하고도 마음을 결정할 수 없을 때 이 이야기 속의 민들레가 온전히 하느님께 귀의하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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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는 보통 강인한 생명력의 화신으로, 화해와 사랑과 신앙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이쯤 되면 민들레를 우리 국민의 정서를 대신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여겨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민들레는 다른 이름으로 ‘앉은뱅이꽃’이라고 하는데, 그 잎이 바닥에 달라붙다시피 하여 자라는 탓에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한다. 예로부터 아이들이 공부하던 서당을 ‘앉은뱅이집’이라고도 했다. 여기엔 깊은 의미가 담긴 이야기가 얽혀 있다. 예전엔 서당 주변에 이 앉은뱅이꽃을 많이 심어 두고 보았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그 뿌리에서 잎사귀까지를 포공영(蒲公英)이라고 하는데 서당의 훈장을 ‘포공(蒲公)’이라 하였고 아이들에게 ‘포공구덕(蒲公九德)’을 가르쳤다고 한다. 민들레에게는 인간이 반드시 배워야 할 이른바 ‘아홉 가지 덕’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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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忍). 뿌리를 잘라버려도, 햇볕에 말려버려도 심으면 다시 싹이 난다(剛). 꽃이 차례를 지켜 지고 나면 다음 것이 피어난다(禮). 나물, 김치 등 쓰이지 않은 데가 없다(用). 꿀이 많아 벌, 나비를 부른다(情). 하얀 유즙으로 다른 생명의 기운을 돋운다(愛). 흰 머리를 검게 만든다(孝). 각종 종기에 효능이 있다(仁). 멀리 씨앗이 날아가 자수성가한다(勇). 이렇듯 교육의 좋은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으니 서당 주변에 심어두고 배움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서와 함께 정신의 영역까지 우리는 민들레를 우리 곁에 두고 소중히 하고 있었다.

요즘은 ‘국민적인 먹을거리’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남쪽 지방의 일부에선 이 민들레를 ‘머슴달래’라고 부르기도 하거니와 달래와 마찬가지로 서민들이 즐겨 먹는 나물의 일종이었다. 쌉싸래한 맛에 생으로 쌈을 싸먹어도 좋지만 된장에 무쳐 먹어도 개운하니 좋다. 그런데 이것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참살이의 바람을 타고 민들레차, 민들레효소, 민들레생즙, 나물, 쌈채, 민들레술, 민들레비빔밥… 난리도 아니다. 고급, 참살이의 식재료가 된 것이다.

자료를 찾다보니 민들레는 만병통치약이다.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잎에 든 베타카로틴은 유해산소를 제거해 노화와 혈압, 당뇨 등 성인병을 막아 주는 항산화 물질이다. 야맹증을 예방하고, 면역력을 높이며 뿌리는 위를 튼튼하게 해준다. 여기에 그 효능을 이루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렇듯 몸에 좋다니 너도 나도 민들레를 찾아 뿌리째 캐어서 희귀식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쨌든 건강을 위해서라는데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몇 가지 알고서 민들레를 대하자.

그 첫 번째가 민들레 ‘씨앗’을 민들레 ‘홀씨’ 운운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이끼나 곰팡이류 등이 무성생식하는 데 있어서 그 포자를 ‘홀씨’라 부른다. “식물이 무성생식을 하기 위하여 형성하는 생식 세포. 보통 단세포로 단독 발아를 하여 새 세대 또는 새 개체가 된다”고 사전에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민들레는 암술, 수술이 있어 이놈들은 꽃가루받이를 하여 씨앗을 맺는다. 인터넷을 한번 검색해 보라. 수많은 ‘민들레 홀씨’가 뜬다. 분명 잘못 사용한 예가 될 것이다. 정확한 표현은 민들레 홑씨이다.

겨울에도 다 시들어 없어진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몇 가닥 잎사귀가 땅에 바짝 엎드려 로제트로 겨울을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른 봄이면 잎과 함께 잎 사이에서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한 송이 꽃은 알고 보면 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진 수백 개의 꽃이 모여서 이룬 것이다. 그렇다고 갈래꽃이 아니라 통꽃이다. 총포라고 이르는 꽃싸개가 그것을 받치고 있는데 총포 끝이 뒤로 젖혀지는 것은 모두 서양민들레라고 보면 된다. 꽃싸개가 젖혀지지 않고 꽃을 받들듯이 싸고 있는 것은 순 우리 민들레이다. 그러나 어느덧 우리 것은 서양민들레에게 다 자리를 빼앗기고 보기가 힘들다. 아직도 시골 한적한 곳에 자라는 흰 민들레는 순 우리 것이라고 보면 된다.

민들레는 광선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수면운동을 한다. 농부가 들에 나갈 무렵 햇살을 받아 피어나고 집으로 들어올 무렵 꽃이 오므라지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농부의 시계’라는 별명을 가졌다고 한다. 서양에서도 민들레를 유용하게 썼던 것 같다. 말린 뿌리를 커피 대용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고 하얀 유즙으로 고무를 채취했다고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들레의 씨앗은 어린이의 신비로운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입김으로 호호 불면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의 씨앗에 붙은 갓털(冠毛)은 햇살에 하얗게 빛나며 아이들의 꿈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봄이 머지 않았다. 시멘트 벌어진 틈에서도 새싹이 돋을 것이다. 그 가운덴 분명 민들레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을 배우며 꿈과 희망으로 새봄을 힘차게 맞을 일이다.

글_ 복효근 시인·사진_ 조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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