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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산] (33) 포천 명성산

[도시와 산] (33) 포천 명성산

입력 2009-11-16 12:00
업데이트 2009-11-1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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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의태자·궁예 눈물꽃 억새, 몸으로 울다

명성산은 경기 포천 산정호수를 품에 안고 강원 철원까지 내닫는다. 해발 923m로 울음산이라고도 불린다. 산행 도중 한눈에 들어오는 호수의 전경이 넋을 놓게 한다. 봉우리가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른 새벽이면 하얀 물안개가 인근 사찰과 폭포와 어우러져 전설처럼 피어오른다. 밤에는 호숫가 산책로에 수은등이 켜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유명세를 치른 명성산을 주민들은 울음산이라고 부른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가 왕건에게 왕의 자리를 내주고 패주하며 산과 함께 울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가슴에 품고 금강산으로 향하다 멈춰 서 눈물을 흘렸다는 전설도 있다. 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해 명성산(鳴聲山)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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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 명성산은 궁예가 반란을 일으킨 왕건에게 쫓기다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그래서인지 백발처럼 쓸쓸하게 보이는 억새가 많다. 등산객들이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억새군락을 지나 삼각봉으로 오르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경기 포천 명성산은 궁예가 반란을 일으킨 왕건에게 쫓기다 통곡했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그래서인지 백발처럼 쓸쓸하게 보이는 억새가 많다. 등산객들이 늦가을 바람을 맞으며 억새군락을 지나 삼각봉으로 오르고 있다.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궁예가 눈물 뿌린 산

명성산은 서울에서 동북쪽으로 84㎞ 떨어져 있다. 암릉과 암벽으로 이뤄졌어도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다. 덕분에 정상에서 바라다보이는 동편 분지에는 억새가 무성해 가을이면 억새꽃축제가 열린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12봉 능선과 북쪽으로 오성산, 동북쪽으로 대성산, 백암산, 동쪽으로 광덕산, 동남쪽으로 백운산과 국망봉을 모두 볼 수 있다. 이 산의 남서쪽 기슭에 산정호수가, 북쪽에 용화저수지가 있다. 산행은 등룡폭포 입구 매점과 식당 앞을 출발, 비선폭포~등룡폭포~억새밭~삼각봉~정상~산안고개~산정호수로 나오는 6시간 코스와 가든식당~비선, 등룡폭포~억새밭~삼각봉까지만 갔다가 자인사로 하산하는 3시간 코스가 가장 많이 이용된다. 등룡폭포계곡 코스는 자인사 기점 코스보다 30~40분이 더 걸린다. 책바위 암릉 코스는 자인사 기점 코스와 소요시간이 거의 같지만 산세가 가팔라 체력소모가 많은 편이다.

산정호수 인근에서 시작되는 산행은 초입부터 좌판을 벌인 막걸리와 파전에 한눈팔기 십상이다. 음식점들 뒤로는 유럽풍 펜션이 들어차 있다. 가족단위 등산객들이 주말이면 진을 친다. 음식점 골목을 벗어나면 왼쪽 비탈길을 따라 책바위로 오르는 난코스와,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는 직진코스로 길이 나뉜다.

억새가 무성한 팔각전망대에서 모두 만나지만 책바위 산행은 가파른 암벽이 곳곳에 있어 안전로프를 잡아야 하는 구간이 많다. 노약자나 여성 등산객들이 등반을 포기하고 뒤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산정호수를 내려다보려면 책바위를 올라야 한다. 암벽에 설치된 철계단에서 내려다보는 호수 전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책바위까지는 1시간가량이 소요되며 급경사가 많다. 팔각전망대까지는 1시간30분가량 더 가야 한다.

대부분 등산객은 책바위보다 계곡 산행을 선호한다. 경사가 완만한 데다 단풍이 선명하고 비선폭포와 등룡폭포가 장관을 연출한다. 온통 단풍과 숨겨진 폭포의 연속이다. 정상에 다다를 때까지 줄곧 계곡길로 터널을 통과하는 기분이다. 명성산의 단풍은 유난히 붉은 것으로 정평이 났다. 폭포는 물빛을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다. ‘비취’, ‘벽록’이라고 표현하는 게 이해가 간다. 평평하면서도 돌 사이로 군데군데 철다리가 놓여 운치를 더한다. 지압로도 있고 운동시설과 피크닉장이 조성됐다. 2시간쯤 오르면 명성산 동편 억새밭이다. 10월이면 절정에 이른 억새꽃이 이 일대를 하얀 솜털로 덮는다. 서리 몇번 내리면 금세 떨어지는 게 억새꽃이라고 하지만 매년 열리는 억새축제에는 8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몰린다. 명성산을 찾은 이들이 다 억새를 보러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억새 산행은 삼각봉까지 오른 뒤 올라간 길로 되돌아오는 코스와 자인사로 향하는 길을 택해야 하는데 자인사 등산로는 다소 힘든 편이다. 등룡폭포 상부인 안덕재는 군부대 사격훈련장이어서 일부 등산로가 폐쇄되기도 한다. 산정호수 매표소(031-531-6103)에 전화해 입산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하산이 즐거운 산정호수

급경사를 지나 하산길에 만나는 자인사는 왜소한 대웅전보다 턱없이 큰 석불이 웃음을 자아낸다.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 태조에 오른 후 자신의 시호를 따서 세운 조그만 암자다. 산불로 소실돼 충렬왕 3년(1227년)에 재건됐고, 한국전쟁 때 전소된 것을 1964년에 다시 지었다. 관세음보살상과 석탑이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았고 경내 샘물은 맛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곧이어 산정호수가 지친 등산객을 맞는다. 이름 그대로 산속의 우물이다. 주변의 높은 봉우리와 기암괴석이 호수와 조화를 이룬 수도권 최고의 호수다. 호수를 빙 둘러가는 5㎞ 산책로는 1시간정도 소요된다. 바닥이 대부분 돌길이어서 비 오는 날에도 질퍽거리지 않는다. 최근에는 산정호수 밤 경치를 보고 하룻밤을 묵은 다음 명성산과 자인사를 다녀오는 1박2일 코스가 인기다.

명성산은 서울 상봉·수유·동서울터미널에서 신철원, 동송, 운천행 버스를 이용해 운천에서 하차, 산정호수행 버스를 타면 등산로 입구까지 15분가량 소요된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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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냐 갈대냐 명성산의 고민

억새와 갈대는 구별이 쉽지 않다. 경기 포천 명성산 팔각정에서 억새밭을 보고 “갈대다.”라고 외치는 등산객이 심심찮게 있을 정도다. 생김새는 물론 꽃피고 지는 시기까지 비슷해서다.

같은 벼과의 1년생 풀이지만 다르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룬다는 점이다. 갈대는 산에서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물가에서 자라는 물억새는 있다.

억새는 뿌리가 굵고 옆으로 퍼져 나가는 데 비해 갈대는 뿌리 옆에 수염 같은 잔뿌리가 많다.

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키도 차이가 있다. 억새는 대부분 120㎝ 내외로 갈대보다 작다. 갈대는 2m 이상 큰다. 그러나 억새도 일조량이 풍부하거나 영양 상태가 좋으면 갈대보다 더 크기도 한다.

색깔로도 구분한다. 억새는 은빛이나 흰색을 띤다. 가끔 얼룩무늬가 있는 게 있다. 억새는 억새아재비, 털개억새, 개억새, 가는잎 억새, 얼룩억새 등 종류에 따라 색깔이 다소 다르다. 갈대는 고동색이나 갈색을 띠고 있다.

구별이 쉽지 않아 억새와 갈대는 역사적으로 혼동돼 쓰이기도 한다. 전남 장성의 갈재는 갈대가 많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노령(嶺)이라고도 부르지만 실은 억새다.

억새는 종류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만 10여종 이상 서식한다. 자주억새가 많다. 흰색꽃을 피우며 잎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거치가 있어 스치면 피부가 베일 정도다. 억새는 으악새라고도 불린다.

억새꽃은 그 생김이 백발과 비슷해 쓸쓸한 정서로 와닫는다. 그래서 황혼과 잘 어울린다. 억새꽃을 가장 멋지게 감상하려면 해질 무렵 해를 마주하고 봐야 한다.

억새 명소로는 명성산과 정선 민둥산, 밀양 사자평 등이 있고 갈대는 충남 서천 한산면 신성리, 해남 고천암 갈대밭 드라이브, 충주 비내섬 등이 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2009-11-16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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