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시시콜콜 예술동네] 디자이너 없는 ‘디자인 서울’

입력 : ㅣ 수정 : 2009-04-07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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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영구 없다’ 식의 철지난 농담과 방식으로 요즘 신세대들을 제압해보려는 당찬 꿈을 가진 중년(?)들이 있다. 다름 아닌 ‘디자인 서울’시이다.

몇 년 전부터 ‘디자인 서울’을 기치로 적잖은 혈세를 썼을 뿐 아니라 2010년에는 세계디자인 수도로 선정되어 이를 기점으로 서울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란다.

하지만 모든 것에 접두어처럼 디자인을 붙이고 외친다고 ‘디자인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닐진데 요즘은 디자인이란 소리만 무성한 가운데 오히려 ‘규제’만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은 느낌이다.

더욱 괴이한 것은 디자인으로 새롭게 디자인하는 서울에 정작 디자이너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새로운 상징 ‘해치’와 ‘서울서체’, 그리고 최근 ‘서울정보문양’과 ‘상징 아이콘’같은 디자인들을 물밀 듯이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누가 디자인한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왜 밝히지 않는 걸까. 디자이너의 이름에 시장님의 함자가 가려질까. 아니면 이름을 밝히길 꺼리는 겸손한 디자이너 탓일까. 그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자신의 디자인에 자신이 없어서일까. 물론 그건 아닐 테고.

서울이 디자인의 도시가 되려면 실력있는 디자이너가 있고 그 디자인을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누군지도 모르는 디자인이 일시적으로 사람들이 감동을 줄 수는 있지만, 지속적으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디자이너의 실체가 있는 디자인이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디자이너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그의 디자인들도 활력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서울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자체나 국가기관의 수많은 CI나 캐릭터도 디자이너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주부들이 선호하는 생활도자기인 영국의 포트메리온이나 로열 달튼, 일본의 노리다케에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박혀있는데 말이다. 상표만 아니라 디자이너의 이름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제품의 가치에 신뢰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자신의 디자인에 이름을 내밀 수 없다면 이는 ‘디자인 서울’이 아니다. 디자이너가 당당하게 이름을 걸고 작품으로 승부하는 최선을 다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추가해서 시각문화의 교육과 체험의 공간이어야 할 서울시립미술관을 대관화랑처럼 운영하는 서울시가 이 미술관의 운영에 겨우 58억원(2006년 기준)을 배정하면서, ‘디자인 서울’ 사업에 10배 가까운 567억원의 세금을 쓰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다. ‘디자인 서울’의 완성을 위해서는 여기에 디자인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면 시각문화에 대한 이해와 훈련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시립미술관의 예산을 늘려잡아 디자인을 소비할 고객 즉 시민들의 안목을 높이는 일도 진행해야 한다. 삶 속의 디자인은 디자인 자체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화장대 앞에 앉아있는 격인 ‘디자인 서울’을 지켜보면, 바지입고 그 위에 팬티 걸친 슈퍼맨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미술비평가>

2009-04-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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