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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 (34) 부신백질이영양증

[희귀 난치병 도전과 정복] (34) 부신백질이영양증

심재억, 이언탁 기자
입력 2007-06-16 00:00
업데이트 2007-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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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닉 놀테와 수전 서랜든이 주연한 영화로, 희귀한 유전병을 앓는 아들을 위해 애를 태우는 부모의 모습을 그렸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이 병의 실체를 알게 됐고, 그래서 영화 중 아들의 이름을 따서 ‘로렌조 오일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바로 ‘부신백질이영양증(ALD·Adrenoleukodystroph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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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유전학클리닉 유한옥 교수
서울아산병원 유전학클리닉 유한옥 교수
서울아산병원 유전학클리닉 유한욱 교수는 이 병에 대해 ‘겪지 않았으면 하는 질병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모계 열성 유전질환인 ALD는 페록시좀(Peroxisome)이라는 효소가 기능장애를 일으켜 지방산을 분해하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물에 녹지 않는 긴사슬 지방산인 ‘VLCFA(very long chain fatty acids)가 전신에 축적되어 발병하게 됩니다.”

대부분 체내에서 합성되는 VLCFA는 신체 중에서도 특히 신경세포와 부신 및 고환 등에 집중적으로 축적되어, 이들 장기의 이상을 유발한다. 특이하게도 같은 가족으로 똑같은 유전자 결함을 가졌어도 질병 발현 양상이나 임상 증상은 판이하다.

“인종에 따른 발병률의 차이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학조사를 통해 확보한 관련 통계자료는 없지만 미국인 남자의 ALD 발현율이 5만명에 1명꼴인 점과, 환자 대부분이 30세 이전에 사망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국적으로 100명 안팎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염색체 연관성 유전질환인 ALD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록시좀과 유전 대사질환과의 관계를 살필 필요가 있다.“페록시좀이란 DNA가 없이 단순막으로 둘러싸인 세포내 과산화 소체로, 적혈구를 제외한 모든 포유동물의 세포에 존재합니다. 이 페록시좀은 체내에서 과산화수소나 긴사슬 지방산의 대사에 관여하며, 이 소체 내에 있는 40여개의 효소 중 하나가 바로 문제가 되는 VLCFA의 산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만약 신생아에게 페록시좀 효소의 기능장애가 있다면 그 유형은 2가지로 요약된다.“첫째는 한 가지의 페록시좀 효소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ALD로, 이는 VLCFA의 비정상적인 산화 때문에 생깁니다. 둘째는 여러가지 효소가 동시에 손상된 경우로, 상염색체 열성유전을 하는 영아형 ALD, 영아형 레프섬(Refsum)질환 및 젤웨거 증후군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이 중 영아형 ALD환자는 거의 출생 직후 숨집니다.”

일반적인 ALD의 중요한 임상적 증상은 청각·시각장애와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의 실어증, 보행장애, 수의근을 이용한 운동소실 등이 꼽힌다.“이를 근거로 6가지 양상으로 구분합니다. 우선 부신척수신경병형과 함께 발병 빈도가 31∼35%로 가장 높고 10세 이전에 증상이 시작되는 소아대뇌형, 즉 우리가 로렌조 오일병이라고 하는 이 유형은 행동 및 지각장애, 신경계 이상 등을 보여 보통 3년 내에 완전 불구에 이르게 되며,20∼30대에 주로 발병하는 부신척수신경병형은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고, 병증이 주로 척수를 침범하며, 환자의 절반 정도는 대뇌가 손상을 입는 유형입니다. 또 소아대뇌형에 비해 진행이 느리고 주로 10∼21세 사이에 증상이 시작되는 청소년기 대뇌형,21세 이후에 증상이 시작되고 병인의 빠른 대뇌 침범이 특징인 성인대뇌형, 신경계 이상은 없고 부신 기능부전만 나타나는 단순 부신기능부전형, 신경계 이상은 있으나 내분비계 이상은 나타나지 않는 무증상형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보듯 ALD는 원인이 같더라도 증상은 매우 다양하게 발현되는 질환입니다.”

기본적인 진단은 혈중 VLCFA의 수치 분석으로 가능하다. 각각의 VLCFA분자에 포함된 탄소 사슬의 구성비를 따져 헥사코사노익산(酸), 테트라코사노익산, 도코사노익산 등으로 분류, 각 구성비를 비교해 진단하는 방식이다. 이 진단 절차를 거쳐야 하는 대상은 부신 기능부전이 있는 남아, 친척 2명 이상이 다발성 경화증 환자인 사람, 남자 친척 중 척수질환자가 있거나 남자 어린이가 유치원 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기억상실과 주의력결핍, 학교적응 실패 경험이 있는 경우, 소아기 남아가 원인 모를 경련을 일으키는 경우 등인데, 특히 남자 가족 중에 유전자 이상이 확인된 사람이라면 유력한 진단 대상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완치가 어렵다는 점이다.“이런 현대의학의 한계를 환자 가족들도 잘 알지요. 그래서 환우회에서 오가피 추출물을 환아에게 먹이는 등 민간요법까지도 동원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점을 전제로 현재 치료에 적용하는 방법은 크게 5∼6가지 정도.“우선 스테로이드 보충요법은 중요한 치료법이지만 신경학적 질환의 경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증요법도 중요하지요. 예컨대 수면장애나 근육긴장과 경련, 음식을 못 삼키는 연하장애, 면역체계의 문제 등은 적절한 대증요법으로 관리해야 하거든요.”

‘로렌조 오일’도 제한적인 치료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영화에서처럼 신경학적 진행을 막는다는 것은 잘못된 묘사지만 VLCFA의 섭취를 제한한 상태에서 로렌조 오일로 치료한 결과 대상자의 50%에서 증상이 완화됐다는 보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 문제인 신경학적 증상을 개선하지 못해 이 치료는 무의미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요.”

199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골수이식은 1년 후의 골수 생착률이 90%를 넘고, 환자의 5년 생존율도 55%나 되며,VLCFA가 정상으로 복원되는 것은 물론 신경 및 정신과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임상 결과가 이어져 향후 유력한 치료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그러나 골수이식은 신경계의 문제가 생기기 전에 시도해야 하고, 환자의 지능지수가 80 이상인 경증의 소아 및 청소년에게만 적용된다는 제한이 따릅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지난 99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국제 ALD치료모임’이 제시한 유형별 권장 치료법이 표준치료법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유 교수는 “궁극적 목표인 완치가 어렵다고 치료를 포기하는 것은 곧 환자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그래도 치료 받는 게 더 나은 삶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2007-06-1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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