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나환자는 유령같은 존재”/ 신작 ‘유령의 자서전’ 펴낸 늦깎이 작가 유영국

“나환자는 유령같은 존재”/ 신작 ‘유령의 자서전’ 펴낸 늦깎이 작가 유영국

입력 2003-07-09 00:00
업데이트 2003-07-09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75년 소록도 하늘과 바다의 쪽빛이 준 시린 기억을 잊을 수 없었죠.그곳에 배어있는 한센병환자(나환자)의 눈물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삼종형이 나환자인 사연도 맞물려 91년부터 쓰기 시작했습니다.”

‘늦깎이 소설가’란 말이 자신을 위한 것인냥 59세가 된 지난 2000년,국제신문사 제정 1억원 고료 제1회 국제문학상을 거머쥐면서 화려하게 등단한 유영국.그가 새로 낸 장편 ‘유령의 자서전’(실천문학사)은 3권짜리 첫 장편 ‘만월까지’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갑오경장에서 6·25전쟁 직후까지 다양한 민중들의 한 많은 삶을 판소리의 사설가락으로 걸죽하게 그렸던 그가,이번엔 한센병환자를 소재로 인간의 원초적 비극성에 눈을 돌렸다.

“제목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었다.”는 그는 “한센병환자는 호적에 사망·행방불명자로 처리된 채 현실에 살고 있는 잊혀진 존재 즉 ‘유령’이며,주인공 김노인의 삶이나 정치가로 출세하기 위해 아버지 존재를 부인하는 아들 정산도 모두 유령이고,나아가 겉치레만 신경쓰는 현대인 모두가 유령일수도 있다.”고 말한다.

작품은 김노인이 회고하는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액자소설(소설 속의 소설)과,작가인 ‘나’가 그의 자서전을 쓰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엇갈리게 배치해 속도감있게 읽힌다.자신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싶은 심정과,아들 등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그대로 묻어두고 싶은 상반된 심정에 시달리는 김노인의 자화상은 작가가 취재 도중 건진 실화에 바탕한 것이다.“95년 초고를 탈고했는데 자료가 빈약하고 감상적 유희에 머문 것 같아 4번이나 개작했다.”며 창작에 쏟은 애정을 들려준다.

소록도를 발이 닳도록 드나들며 발로 뛰어 쓴 작품이어서일까.한센병을 다룬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비교해달라고 하자 “주제가 다르다.”면서 “나환자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밀도에서는 추종을 불허한다.”고 당당하게 말했다.그 이면엔 등단은 늦었지만 30년의 교직생활에 라디오드라마 작가,비교문학연구 등의 왕성한 지적 호기심에서 우려낸 글솜씨에 대한 자부심도 어려 있다.

“내세울 만한 학연·지연이 없어 문단과 담쌓고 지낸다.”는 그는 자신의 오랜(?) 습작기를 도연명의 ‘無弦琴’,즉 현이 없이,즐기듯 비파를 타는 것에 비유했다.주위에서 ‘문단의 들개’라고 불리는 그답게,젊은 작가들의 작품경향에 막힘없는 직언을 쏟아냈다.“언어를 너무 무시합니다.또 자아도취의 흔적인 독백투나 격한 표현을 위한 도치법을 남발해 관념이 앞서 안타깝습니다.”

글 이종수기자

사진 안주영기자
2003-07-09 27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