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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임기의 「마지막 5분」(정경문화포럼)

대통령임기의 「마지막 5분」(정경문화포럼)

강수웅 기자
입력 1993-02-01 00:00
업데이트 1993-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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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에 대한 책임 막중한 직무/현장순시 통한 공약사업 점검은 당연

축구는 경기시작 5분과 끝날때 5분이 중요하다고 한다.전열이 미처 정비되기 전의 초반 실점과 막판의 방심이 게임을 그릇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골프도 마찬가지이다.첫 홀을 「올 보기」(All Bogey)로 적자는 너그러운(?)제의도 몸이 풀리기 전의 상황을 보아주자는 동양적 미덕에 다름아니다.매사 시작과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대통령직 수행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미국의 부시대통령은 임기가 끝나는 날까지도 이라크와의 전쟁을 수행했다.뒤를 이은 클린턴대통령도 취임직후부터 세계를 향한 경제전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청와대에 대해서는 말들이 많다.취임을 한달도 안남겨 놓은 차기대통령에 대한 「주문」도 있고 현직대통령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봉황마크는 권위의 상장이니까 사용해서는 안되겠다,청와대를 관광명소로 개방하라,직제와 기능은 어떻게 개편해야 한다는 등 문민대통령에 대한 바람이 적지 않다.그러나 아직은 「청와대」라는 명칭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하기야 이승만대통령시절의 경무대,박정희·전두환대통령때의 청와대는 「절대」에 가까운 권위의 상징이었다.청와대는 권부 그 자체였다.에스프리(esprit)가 바뀌면 그 형식도 변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문민정부시대에 있어서의 청와대를,국정수행의 실체인 헌법기관을,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변모시켜야할 것인가의 문제가 「명칭」하나로 좌우될 수는 없다.그러나 권부의 상징이었던 청와대의 개칭은 필요할지도 모른다.그것은 「대통령의 집」「효자동집무실」또는 「북악정사」등 어떤 이름이라도 좋다.그 뜻은 꼭 명칭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개선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청와대에서 나오는 말은 언제나 신뢰성을 가져야하며,그곳에서의 업무처결은 국가의 장래를 위한 「결단」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그 이미지의 개선은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김영삼정권출범 초기에 해당하는 1년이내가 그 시한이라고 볼 수 있다.그러나 대통령의 임무가 어찌 시기를구분하여 중요성이 다를 수 있을 것인가.그럴 수 없다.불행하게도 대통령은 결과로서 평가받는 자리이다.동기의 선의나 과정의 민주적인 정당성만으로는 면책될 수 없는 결과책임을 지고 있다.따라서 대통령은 역사에 대한 책임을 그 무엇보다 중시하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선택불가피한 일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인기가 없더라도 장한 결단을 내리고 줄기차게 추진하는 대통령이어야 한다.21세기를 내다보면서 국가발전과 국민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도록 국정개혁에 전력투구하는 대통령이어야만 된다.나라의 장래는 바로 이런 개혁의 성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임기말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떠나는 대통령이 무엇이 그처럼 행사가 많으냐는 비난도 없지 않은 모양이다.노태우대통령은 임기를 불과 25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주요공약 사업의 추진사항을 점검,독려하기 위해 전국의 공사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있다.

또 각계 각층의 인사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재임기간동안의 협조와 지지에 감사를 표하고 국정수행 경험을 술회하는 기회를 갖는다.임기내에 정리해야할 일을 차기정부에 넘겨 짐이 되도록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이와같은 청와대행사는 엄연한 국정수행의 일환이다.그러나 지난 25일 민주당의원 26명은 부부동반 청와대초청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퇴임을 앞두고 연일 계속되는 청와대만찬에 대해 민주당은 참석할 수 없다.한시라도 국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마당에 만찬은 불필요하다』는 당론을 앞세웠다.이에대해 청와대측은 『그동안 국정을 걱정했던 여야의원들과 한자리에 만나 식사라도 함께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어 보려는 소박한 생각에서 계획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민주당이 이같은 순수한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를 잔치판 운운하며 불참키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섭섭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인지상정아니겠는가』라고 언급했다.

청와대행사에 대한 거부감은 비단 이것 뿐이 아니었다.비근한 예가 지난해 11월 교토(경도)한일정상회담이었다.

이것은 정상들의 실무회담이라는 좋은 선례를 남긴 회담인데 대다수 신문은 이를비판했다.이에대해 노대통령은 『일관성있게 비판했다면 모르겠는데 조금 있다가 논조가 돌아서지 않았는가』라고 지적하고 『언론의 비판에 대해 쓴약은 양약이다라는 원칙을 갖고 있었으나,쓴약은 쓴약인데 양약이 안되는 것이 있더라』며 한탄한 일이 있다.

국정의 최고 책임부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클 수 밖에 없고,그에 따른 주문은 많을 수 밖에 없다.그러나 그 주문은 한마디면 족하다.임기 5년을 통틀어 간단없이 국정개혁의 성과를 올려달라는 것이다.국민의 이같은 희망은 대통령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인사들을 통해,또 그가 선임하는 「언제나 바른말을 할 수 있는 비서실장」을 통해 수렴될 수 있는 것이다.<강수웅 서울신문 정치부장·비상임논설위원>
1993-02-01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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