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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으로 넘나드는 일본문화(사설)

공중으로 넘나드는 일본문화(사설)

입력 1990-01-24 00:00
업데이트 1990-0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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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아파트 동네에서 아파트 건물을 올려다보면 베란다나 창틀에 양산처럼 펼쳐진 은빛이나 흰빛 물체가 보인다. 파라볼라 안테나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난다. 조만간 국경일에 내거는 태극기숫자를 능가할 것 같다. 고급주택촌도 마찬가지다. 업계의 추산에 의하면 15만개는 보급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이 안테나는 89년 1월부터 수입자유화되면서 설치비용이 내려 80만원선이다. 이런 비용을 들여 안테나를 설치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대개가 일본TV를 시청하기 위한 것이다. 자국의 난시청지역 해소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일본이 쏘아올린 방송위성에서 보내는 전파가 인접해있는 우리의 머리위에도 닿게 되었고 이 전파를 한발밖에 안될 직경을 가진 접시형안테나로 받아서 수신할 수 있게된 것이다.

잡힐 만한 지점에 전파부터 보내놓고 그걸 받을 수 있는 기구를 수입자유화하게 하는 순서가 사전에 세워놓은 각본에 따르듯 착착 진행된 셈이다. 순치된 소비자처럼 앞다퉈 안테나를 팔아주고 그것으로 그들이 보내주는 그들의 「문화」를 충실히 받아섭취하고 있는 가구가 15만에 이르고 앞으로 더욱 늘어갈 것이다.

이같은 전파문화의 침투를 위해 고의든 아니든 아주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시나리오를 마련해놓은 듯한 심증을 주는 것은 현재 송출중인 NHK종합방송과 교육방송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난시청치역을 대상으로 한다기에는 너무 고급하고 광범위한 수준의 국제적 정보와 교양프로그램을 송출하고 있다.

그나라 외상이 잠깐동안의 공식방한을 했을때도 한국의 가요가수를 호텔로 불러 유행가를 함께 부르는 촌극을 서슴지 않았고,주한일본문화원을 통해 일본영화감상회 공세를 꾸준히 펴는 나라다. 대중문화 수출의 기반조성을 위해 치밀한 공략을 짜여진 일정대로 취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안테나 끼워팔기까지 성공적으로 해낸 공영방송의 전파송출로 친화력을 숙성시킨 다음 오는 9월이면 그들의 상업방송이 위성을 통해 미리 닦아놓은 길을 따라 이땅에 들어올 것이다. 그들의 그 무서운 상업주의는 무사도에서 야쿠자문화까지,대화혼에서 포르노상품까지가 자연스럽고도 신속하게 흘러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순치시킨 한국인들을 척후병삼아 그들이 그토록 노려오던 대중문화상품도 거침없이 밀려들 것이다. 그들의 대중문화 침투를 이제까지 방어해온 것은 「민족감정」이라는 둑 뿐이었다. 허약한 지상전의 저지구조물같은 우리의 이 둑을 비웃듯이 공중전으로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국제간의 문화교류를 국수주의적 폐쇄성으로 대응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자국의 고유문화가 외래문화의 침투라는 원치않는 방법으로 파괴되는 것을 방어할 권리도 국가간에는 있다. 이웃집 주정꾼의 소음이 담을 넘어오면 삼가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한나라의 미풍양속은 정신적 자원이고 무형문화재다. 그걸 파괴하지 않도록 인접국에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겐 있다. 상업방송위성의 송출을 약하게 한다든가,수신료를 물고 보는 자국 수용자에게만 시청이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미리미리 요구해야 한다. 지금 서둘지 않으면 「완성된 것이므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나올 게 뻔하다. 더늦기 전에 강력한 비상대책을 강구하는 일이 화급해졌다.
1990-01-2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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