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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품은 우리 동네] (24)경북 고령군 우륵로·정정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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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12-10-31 00:44 길을 품은 우리 동네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가야금 문화 꽃피웠던 곳… 우륵의 예술혼 오롯이

경북 고령군은 인구 3만 5000여명의 작은 고장이지만 대가야의 고대문화가 창달했고 가야금 문화를 꽃피웠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지역이다. 고령 시가지와 가까운 대가야박물관과 왕릉전시관 등에서는 아직도 고분 발굴이 진행되고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역사 유적지인 반면 가야금을 테마로 하는 우륵박물관과 가얏고마을 주변은 소박한 농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대 도읍지로서의 웅장함과 가야금 고향의 예술혼이 함께 내려오는 곳이 바로 고령이다.

경북 고령 ‘우륵로’의 시작점인 고령종합시장 중앙네거리의 모습. 고령종합시장은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5일장이 서는 곳이기도 하다.

▲ 경북 고령 ‘우륵로’의 시작점인 고령종합시장 중앙네거리의 모습. 고령종합시장은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5일장이 서는 곳이기도 하다.



도로명 주소 사업과 함께 새롭게 탄생한 길 이름들은 이러한 고령의 역사·문화적 유산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령 시가지를 지나 우륵박물관과 정정골, 가얏고마을로 이어지는 도로들은 ‘우륵로’와 ‘가야금길’ ‘정정골길’로 각각 명명되며 고령의 예술혼을 길 이름으로 승화하고 있다.

‘우륵로’는 이름 그대로 가야금을 창시한 고령 출신의 악사 우륵에서 유래했다. 기존 지번 주소로 고령군 고령읍 헌문리 229-2번지에서 시작해 고령읍 쾌빈리 488번지를 종점으로 하는 길이 848m의 거리다. 2009년 행정적으로 도로명이 고시되기 이전에도 지역 사람들은 이 거리를 ‘우륵로’라고 불렀다. 특별히 누가 정하지도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부르던 길 이름은 도로명 주소사업이 시작되며 공식적으로 이름을 갖게 됐다.

가야금을 주제로 한 ‘우륵박물관’의 전경. 건물의 형태는 가야금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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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금을 주제로 한 ‘우륵박물관’의 전경. 건물의 형태는 가야금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우륵로의 시작점은 고령군의 중심지이자 고령종합시장이 위치한 중앙공원 네거리다. 고령종합시장에서는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5일장이 열려 합천과 거창, 성주 등에 사는 시민들이 이곳을 찾아 장을 본다. 중앙공원에는 원래 조선시대에 쾌빈정이라는 정자가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경찰서가 들어서 있었다. 그만큼 이곳은 과거에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중심지였다. 외부에서 온 손님에게 연회를 베풀었다는 의미의 쾌빈정은 ‘쾌빈리’라는 지역명으로 이어졌고, 우륵로 주변의 도로들에도 ‘쾌빈 1·2·3·4길’라는 이름이 각각 붙여졌다.

우륵로 종점 부근의 야트막한 동산에는 우륵의 영정각과 기념탑이 조성된 공원이 있다. 1977년 건립된 우륵기념탑은 높이 16m로 12현의 가야금을 형상화했다. 과거 고령 아이들은 공원을 놀이터 삼아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우륵기념탑의 철제 부분에 돌을 던지며 노는 것이 당시 아이들의 흔한 모습이었다. 돌을 맞은 기념탑은 마치 악기가 울리듯이 ‘웅~’ 소리를 냈는데 이 소리가 아이들에게는 재밌게 들렸나 보다. 우륵기념탑은 일종의 거대한 장난감이었던 것이다. 인구가 줄고, 젊은이들이 떠난 고령에서 누가 더 높이 돌을 던졌는지, 누가 던졌을 때 소리가 더 컸는지 내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우륵로를 자동차로 3분여 지나 우륵박물관 길목으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가야금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인근 대가야박물관과 연계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우륵박물관은 전국 유일의 가야금을 주제로 하는 박물관으로 장구, 아쟁 등 다양한 국악기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 때문에 교육적 가치가 높아 학생들이 특히 많이 찾는다. 또 우륵국악연구원이라는 이름의 가야금 공방에는 가야금 연주와 제작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돼 인기가 높다. 이곳에는 가야금 장인 김동환(45) 악기장과 제자 2명이 숙식을 같이하며 명품 가야금을 제작하고 있다.

22가구가 사는 정정골마을을 지나는 ‘정정골길’은 가야금길과 바로 이어지는 길이 802m 의 도로다. 정정골마을도 가야금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우륵이 대가야 가실왕의 명을 받고 가야금을 창제한 곳으로, 그가 가야금을 연주할 때 산골 곳곳으로 ‘정정하게’ 소리가 울렸다는 의미에서 마을 이름이 ‘정정골’이 됐다. ‘하가라도’(下加羅都) ‘달기’(達己) 등 우륵이 작곡한 12곡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정정골에 조성된 가얏고마을은 2007년 행정안전부와 서울신문사가 주관한 ‘살기 좋은 지역만들기’ 공모사업을 통해 대상 지역으로 선정됐다. 인근 중화저수지에 자연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가야금을 주제로 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쌀 생산에 머물던 소득원을 확장했다. 조성 초기에는 지자체의 전시성 사업이 되지 않겠느냐는 편견도 있었지만, 이곳에서 농사 체험과 가야금 연주 체험 등을 즐기는 방문객은 1년에 1만여명이나 될 만큼 고령의 대표적인 소득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야금과 연관된 도로명은 아니지만 ‘쌍쌍로’라는 재미있는 길 이름도 고령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끈다. 쌍쌍로는 서로 마주하고 있는 고령 쌍림면과 합천 쌍책면의 경계 길 이름으로, 두 지역명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이다. 당초 고령은 ‘쌍림로’로, 합천은 ‘쌍책로’로 각각 이름을 짓겠다고 주장하다 결국 각자 한 글자씩 이름을 내놓기로 했고, 서로 똑같이 ‘쌍’ 자를 제시해 탄생한 도로명이다.

글 사진 고령 안석기자 ccto@seoul.co.kr

2012-10-3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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