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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입력 2011-03-29 00:00
업데이트 2011-03-2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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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럴수가… SNS 민주화 혁명 왕년엔 총칼로 다 됐는데…”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격해지고 있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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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지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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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둥, 사담 후세인.

대중은 물론 자신마저 완벽히 포장할 수 있는 대의명분이 있었지만 결국엔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재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의 묘사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나폴레옹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이나 100여 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많게는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주무르지 않았는가.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당신들이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 거냐. 난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난 4500만명 중 3800만명의 찬성표를 얻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의했다는 증거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후계자다(레닌은 말년에 뜻을 바꿨지만, 스탈린이 발표를 방해했다. 또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야 출신에,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나에 대한 지지는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총칼만으로는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20세기 이후의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 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의 관심사인 ‘재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 했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공을 세울 수 있었다.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 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히틀러의 연설기법 대부분은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후세인 다른 사람들은 딱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재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 그 이후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 ‘하마’로 불리는 공포의 실체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대로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한순간에 무너진 거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을 가장 큰 타도의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우리는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 보자.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당신들의 독재는 총칼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약속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게 됐다.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목표는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밖에 없었다. 나의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당연한 얘기만을 했다(히틀러의 전쟁은 영국과 프랑스 양강체제였던 유럽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대전이 무모하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독일 사람들은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내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서 졌다는 것이다. 그러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 있지 않을 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하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고만 계속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들인 것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대중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게 마련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된다(스탈린은 생산량에 미달하면 관리자를 처벌했기 때문에, 관리자들이 생산량을 속이곤 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사상 최저였지만,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하지만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지도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히틀러의 정책이 최소한 ‘실패’하지 않은 것은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가능하니까, 독재자들은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살 수 있다.”고 말한다.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 문제다.

후세인 아랍권에는 구조적으로 ‘복지 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민심의 동향을 전망하기 쉽지 않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는 심하지만,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나 의식주 걱정도 없다(아랍의 왕조 체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독점한 국부를 베풀 듯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민주화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영국 역사가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누구도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다. 만약에 지금 세상 같은 청문회가 있다면 난 완벽한 후보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고 권력에는 손도 대지 못하게 했다. 난 평생 정치만 생각했다(스탈린을 만난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을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은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롭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 믿을 건 가족뿐이다. 그런데 가족은 부패할 수 있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석상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기도 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모두 가족 문제가 있었고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는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 때문이다.

→나폴레옹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재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 혁명의 종착점은 어디인가.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많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이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는가.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문을 걸어잠그고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그럴듯한 꾐이나 세뇌만으로 가능했던 독재의 시대는 끝났다. 이번에 혁명이 실패한다고 해도 절대 끝이 아니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지역이 넓고 민족도 다양해 하나가 되는 추진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경제적 몰락이나 체제붕괴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만 남았다.

후세인 결국엔 미국이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모인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하지 않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는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카다피도 미국에 밉보였으니 내정간섭이나 다름없는 다국적군의 공격을 받고 있는 거지. 어떤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실제로 국제사회의 독재자는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에 대한 국민의 사랑은 진짜였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 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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