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길섶에서] 정(情) 맛/서동철 논설위원 l 2016-05-31
전주 가는 길, 익산역에 내리니 갈아탈 버스 시간에 여유가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역전의 작은 중국집에 들어섰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여행길에는 꼭 짜장면이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짜장면 맛은 비슷하다는 것이 지론이었다. 구미에 당기는 식당이 보이지 않자 결국 그 ‘지혜’를 떠올린 것이다…
[길섶에서] 모내기/박홍기 논설위원 l 2016-05-30
물이 찬 하얀 들판이 파랗게 바뀐다. 파릇파릇 싹이 돋아난다. 겨우내 황량했던 들판에 물이 차더니 생명의 기운을 되찾은 것 같다. 이앙기가 지나갈 때마다 파란 뗏장이 입혀진다. 모내기다. 참 세상 좋아졌다. 모내기 땐 동네가 시끄러웠다. 집안 식구들이 전부 나섰다. 동네 어른들은 품앗이를 나왔…
[길섶에서] 동네 미용사/최광숙 논설위원 l 2016-05-28
얼마 전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동안 미용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찌감치 진로를 고민한 끝에 정한 직업이 지금 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창 철없을 나이에 “결혼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직업이 뭘까 고민했다”고 하니 보통 야무진 성격이 아니지 싶다. …
[길섶에서] ‘미스김’의 귀향/구본영 논설고문 l 2016-05-27
몇 주 전 진로 문제로 방황하는 막내아들과 함께 충북 음성의 사회복지시설인 꽃동네를 찾았다. 심신이 모두 불편한 중증 장애인들을 하루 동안 돕는 봉사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수용자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시설 앞마당을 산책할 때였다. 정신 지체에다 앞도 못 보는, 한 수용자를 휠체어에…
[길섶에서] 50대의 행복지수/임창용 논설위원 l 2016-05-26
친구들 모임에서 대화의 절반은 노후 얘기다. 50대 중반이 가까워지면서 모든 관심이 은퇴 후에 쏠려 있는 것이다. 50대는 자녀가 대학생이거나 결혼을 앞둔 사회 초년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육비나 결혼비용 마련 같은 시급한 문제와 함께 은퇴 후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시기다. 노후 얘기가 시작되…
[길섶에서] 작은 차 예찬/서동철 논설위원 l 2016-05-25
15년 동안 30만㎞를 달린 자동차를 폐차장에 보낸 것이 재작년 이맘때다. 당시 산 새 차의 누적 주행 거리가 6만㎞를 가리키고 있으니 그동안 어지간히도 돌아다녔다. 이미 헌 차가 된 지금의 승용차는 1600㏄짜리다. 버린 차는 2000㏄ 중형급이었으니 크기를 줄인 것이지만 작은 차의 만족도는 높다. …
[길섶에서] 장애인 주차구역/박홍기 논설위원 l 2016-05-24
급했다. 여느 아침과 달리 서둘렀다. 병원에 들른 뒤 수업에 늦지 않게 딸을 학교까지 태워다 줄 요량이었다. 딸이 전날 감기 기운이 있더니 결막염 증세까지 보였다. 감기라면야 학교에 보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눈병은 다르다. 전염 가능성 탓이다. 진단에 따라 등교를 결정할 참이었다. 동네…
[길섶에서] 꽃의 여왕/손성진 논설실장 l 2016-05-23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이다. 집 담벼락에 만개하여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장미꽃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름다움보다 도도함에 취했다고 할까.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꽃의 여왕은 가히 장미라 할 것이다. 겹겹이 겹쳐진 선홍빛 꽃잎의 아름다움은 뭇 꽃들이 범접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이다…
[길섶에서] 둥지/박홍환 논설위원 l 2016-05-21
콧바람 쐬러 가끔 찾는 한강 수계의 한 수로에서 검둥오리 일가족이 부들밭 가운데에 보금자리를 짓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다. 흔치 않은 기회여서 한 시간 가까이 관찰했다. 연두색 햇부들이 30㎝ 정도 높이로 성기게 솟고 있는 수로의 가장자리가 이들의 새 터전이다. 겨우내 삭아 내린 부들 줄기가…
[길섶에서] 다음 생/최광숙 논설위원 l 2016-05-20
절에 다녔던 어머니는 윤회(輪廻)를 믿었다. 사람이 죽은 뒤 지은 업(業)에 따라 지옥도 가고 극락도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살아생전에 좋은 일을 많이 해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소원 중에는 “다음 생에는 꼭 남자의 몸을 받는 것”도 있었다. “왜 남자가 되길 바라는지”를 굳…
[길섶에서] 어떤 후배/임창용 논설위원 l 2016-05-19
한동안 잊고 있던 오래전의 불편한 느낌을 떠올린 건 한 대학 후배 때문이었다. 28년 만에 동문 모임에서 본 그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생생하게 기억을 복원시켰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한가운데 섰던 후배다. 항쟁의 도화선이 된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는 순간 뒤에서 부…
[길섶에서] 생인손/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 2016-05-18
자꾸 욱신욱신 쑤신다. 안 하던 짓을 한 탓인가. 모처럼 선심 쓴 봉사(?)의 후유증이 이렇게 크다. 똑같이 앉아 다듬었는데, 왜 유독 나만 아픈 걸까. 지난 일요일 멸치 다듬기가 화근이다. 혼자 앉아 굵은 멸치 대가리며 똥을 발라내는 아내의 모습이 왠지 측은해 보였는데. 거들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
[길섶에서] 수다의 인류학/최광숙 논설위원 l 2016-05-17
가까운 이들과 미주알고주알 사는 얘기를 나누다 보면 헛헛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수다가 주는 ‘힐링’의 힘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여자들의 수다를 아주 소모적인 ‘시간 죽이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이들에게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의 ‘사…
[길섶에서] 덧신 두 켤레/박홍기 논설위원 l 2016-05-16
한 여자아이가 교단 앞으로 나왔다. 쑥스러워하며 작고 예쁜 꾸러미를 내밀었다. 직접 쌌는지 포장은 좀 엉성했다. 다른 아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조심스레 뜯었다. 앙증맞은 덧신 두 켤레가 들어 있었다. 집에서 보낸 선물이 아니다 싶었다. 용돈으로 정성스레 마련한 ‘스승의 날’ 선…
[길섶에서] 돈과 명예와 건강/강동형 논설위원 l 2016-05-14
돈과 건강 중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당연히 건강을 선택할 것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건강을 잃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모처럼 한 후배가 전화를 해 지인의 전화번호를 묻는다. 다행히 후배가 찾는 전화번호가 있어 알려 줬지만 그 후배…
[길섶에서] 봄밤/황수정 논설위원 l 2016-05-13
이맘때 시골집에 가면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 아파트촌의 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뻣뻣했던 오감이 밤 깊어 제자리를 찾는다. 멀리 무논에서 몰려오는 개구리 떼창. 목이 째져라 합창했다 뚝 그쳤다, 정해진 리듬을 탄다. 가만 듣고 앉았으면 멍석을 깔아도 되겠다 싶게 신통해지는 내 감각. 풀숲에 엎…
[길섶에서] 할머니 가설/최광숙 논설위원 l 2016-05-12
아침에는 유치원 가는 손자들을 챙기고, 그들이 집으로 돌아오면 놀이터에서 함께 놀아 주는 할머니들을 자주 본다. 비가 오면 젖을세라 옷을 여며 주고, 겨울이면 추울세라 모자를 씌운다. 손자를 바라보는 할머니들의 눈길은 사랑 그 자체다. 동물과 달리 인간만이 폐경이 지나도 10~20년 건강하게 활…
[길섶에서] 동네 카페/임창용 논설위원 l 2016-05-11
언젠가부터 주말이면 동네 카페에 가는 습관이 생겼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다. 7년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한 뒤 주변에 하나둘 생긴 카페들이 이젠 족히 수십 곳은 된다. 요즘은 카페도 경쟁이 치열해 각기 멋을 부리느라 분위기와 개성이 살아 있다. 그래서 한 군데 정해 놓지 않고 이곳저곳 찾아간다…
[길섶에서] 카네이션/서동철 논설위원 l 2016-05-10
어버이날이라는데 카네이션 구경을 하지 못했다. 직장에 다니는 딸아이는 전날 밤 현관에 들어서면서 “올해는 카네이션 없어. 내 경제력으로 카네이션 사는 것은 사치야. 대신 식사를 모실게” 하는 것이었다. 카네이션을 사러 갔더니 예전처럼 한 송이씩 파는 것은 보이지 않고 화려하게 꾸민 몇만원…
[길섶에서] 여행의 꿈/손성진 논설실장 l 2016-05-09
늘 떠나는 꿈을 꾼다. ‘가슴 떨릴 때 떠나라, 다리 떨릴 때는 이미 늦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꿈만 꾸지 바쁜 일상에 쫓겨 꿈으로 끝나고 있다. 사흘간의 부산행은 그래서 정말 꿈이 실현된 것 같은 아름다운 여정이었다. 좁은 국토인데도 아직 가 보지 않은, 나에겐 아직도 미지의 세계가 국내에…
[길섶에서] 우물에서 숭늉 찾기/서동철 논설위원 l 2016-05-07
10년 넘게 잡초만 가득하던 충청도 시골집 마당에 한 달 전쯤 매화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 뿌리와 연결된 대궁 하나만 남기고 가지를 모두 잘라 버린 묘목은 앙상하기만 했다. 땅에 심으면서도 이게 과연 살아날까 은근히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난주 자세히 살펴보니 묘목마다 아주 작은 연두…
[길섶에서] 말(言)/박홍기 논설위원 l 2016-05-06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탈 때 눈에 들어오는 패널이 있답니다. 승강장 벽에 걸려 있지요. 글 제목이 ‘말’입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며 종종 읽곤 합니다. ‘말이 많았다고 후회하지 마십시오. 말이 많은 것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생긴 습관입니다. … 들뜬 마음이 고요해지면 차츰 말이 조절됩니다.’…
[길섶에서] 생각, 세 번/박홍기 논설위원 l 2016-05-05
“생각, 세 번 해보란 말 들어 봤나.” “공자께서도 두 번 생각을 말씀하셨는데….” 고전(古典) 번역 쪽에서 일하는 선배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던진 ‘세 번 생각’에 대한 대구다. 그러면서 고려의 재상 이규보의 말을 들려줬다. ‘섣불리 생각하지 말자. 섣불리 생각하면 틀리기 쉬우니. 너무…
[길섶에서] 봄비/손성진 논설실장 l 2016-05-04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린다. 메마른 가슴과 타들어 가는 대지를 흠뻑 적셔주어 먼 길 걷다 만난 샘물처럼 고맙기 그지없는 비다. 이 비가 그치면 푸릇푸릇한 신록이 온 산을 덮으리라. 우리네 마음도 촉촉이 젖어 이럴 때면 파전을 곁들인 막걸리 한잔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만개한 꽃잎을 떨어뜨리…
[길섶에서] 황금수와 꽃잎/강동형 논설위원 l 2016-05-03
아인슈타인에게 한 여학생이 방정식에서 무엇을 찾느냐고 묻자 그는 “신의 생각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숫자를 ‘신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숫자를 통해 ‘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숫자에도 황금수가 있는데 황금비(1대1.618…)를 구성하는 무리수를 황금…
[길섶에서] 품앗이/박홍기 논설위원 l 2016-05-02
아직 봄인데 여름 같다. 바람이 있지만 덥다. 푸른 산에는 진달래꽃이 여전히 붉다. 이른 아침부터 어른들의 손길이 바쁘다. 못자리를 하는 날이다. 파랗게 싹이 난 모판을 줄지어 논에 내다 놓았다. 논에는 적당히 물이 차 있다. 가지런히 놓이는 모판은 잔디 같다. 모판 정리가 끝나자 대나무로 지줏…
[길섶에서] 주름의 향/임창용 논설위원 l 2016-04-30
나이 쉰을 넘기면서 거울 보는 횟수가 잦아진 것 같다. 간혹 눈썹이나 콧속에서 하얀 터럭이 돌출하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다. 엊그제 출근 전 거울을 보니 터럭은 없는데 눈 주변 주름이 장난이 아니다. 언제 이렇게 주름이 많아진 거야? 큰 사고라도 난 양 떠들자 아내가 ‘오십 중반에 새삼스…
[길섶에서] 성공과 실패의 차이/오일만 논설위원 l 2016-04-29
대학교 때 일이다. 늘 주위에 미인이 끊이지 않던 친구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봐도 장동건이나 송중기 스타일의 꽃미남은 아니다. 그렇다고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 친구에게 좀 미안한 말이지만, 여자들이 좋아할 구석이 별로 없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울 듯하다. 한번은 그 친구…
[길섶에서] 어느 날 점심/서동철 논설위원 l 2016-04-28
점심 약속이 없을 때는 굳이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 쓰지 않고 호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오늘은 점심 메뉴로 세운상가 근처의 칼국수집을 떠올렸다. 주변의 작은 전자부품 가게 주인인 듯 혼자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처음 갔을 때는 3500원이었는데, 그사이…
[길섶에서] ‘작은 결혼식’/구본영 논설고문 l 2016-04-27
셰익스피어는 “남자가 (여성을) 설득할 때는 화사한 4월”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는 듯 4월이 되니 청첩장이 하나둘 쌓이고 있다. 시인 하이네가 그랬다. “결혼 행진곡을 들으면 언제나 싸움터로 향하는 군대 행진곡을 떠올린다”고. 가슴 설레는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일지라도 막상 결혼 생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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